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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보건 당국이 중동호흡기중후군(MERS·메르스)의 확산을 차단하는 데 실패하면서 국내 전염병 관리시스템 전반을 개선하고 거버넌스도 재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 질병관리본부장인 전병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8일 "이번 메르스 사태는 전염병이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앞으로 감염병 관리시스템 전반을 제도와 재정 측면에서 개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한 달여 간 한국의 전염병 관리 시스템이 보여준 성적표는 독일·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초라하다. 독일의 경우 지난 6일 메르스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그로 인한 추가 감염자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고 미국도 지난해 발 빠른 대처로 2차 감염을 차단했다. 우리는 3차·4차 감염자까지 속출하고 있다.
우선 전염병 발생시 정부·의료기관·지방자치단체 간 협력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가적인 방역 대책의 핵심축이 돼야 할 보건복지부와 서울시는 메르스 사태 이후 줄곧 사실관계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등 불협화음을 냈다. 지자체와 지역 병원이 의심 증상이 나타난 환자를 즉시 격리 조치하고 정부 부처와 로버트코흐연구소, 본 대학 등이 접촉자 조사에 긴밀하게 협력한 독일 사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니더작센주 코넬리아 룬트 보건장관은 "한국의 사례는 메르스에 대한 체계적·협력적 질병 관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비극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염병 위기상황 발생시 확실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보건 당국이 초동대처에 실패해 메르스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면 응당 질병관리본부가 전면에 나서 추가 확산을 저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도, 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도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급기야 대통령의 지시로 민간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즉각대응팀이 구성돼 사태 해결에 나서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해 4월과 5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다녀온 사람들이 각각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자 비행기·버스 등에서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사람들의 명단을 확보해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했던 것과 크게 비교된다. 당시 미국은 단 1건의 2차 감염도 없었다.
이종구 한국-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 공동단장 역시 '거버넌스 부재' 등을 꼽았다. 이 단장은 "이번 사태는 지난번 인플루엔자 유행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거버넌스·지방정부의 동원 등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