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비리와 거짓말/이만기 한양대 교수(시론)

○허위로 뒤덮인 「한보」지금 우리사회는 비리와 불신의 중병을 앓고 있다. 한보사건으로 이 중병이 도져 국가 전체가 사경을 헤매는 처절한 모습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만금의 뇌물을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거짓을 더욱 강력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 이상의 진실은폐는 이 나라를 구제불능으로 만든다.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 타인의 잘못을 처벌하는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잡으려는 자 스스로 역사앞에 거짓이 없도록 솔직해지는데 있어야한다. 역사는 특정한 정권이나 힘있는 자만이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강한자나 약한자 모두가 영원한 역사 앞에서 엄숙하고 진실해야 한다. 지난달 한보사건이 터질 무렵 미국에서는 하원의장 깅리치비리사건이 연일 대서특필되었다. 하원의장 선거에 앞서 터져 관심이 더 컸으나 그는 모든 사실을 솔직히 시인했기 때문에 세표를 더 얻어 하원의장에 재선되었다. 그러나 그가 소속된 공화당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하원윤리위에서 절대다수의 의원들이 그의 비리혐의를 인정, 30만달러상당의 벌금 결정을 내렸다.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이를 은폐하려했기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쫓겨났지만, 깅리치는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기 때문에 공직을 박탈당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가장 큰 덕목은 어떠한 비밀도 국가가 요구하면 은폐하지 않는 정직성이다. ○미 공직자 식언땐 끝장 최근 미국방문중 클린턴 대통령의 취임식과 국정연설장면을 TV를 통해 인상깊게 지켜봤다. 그중 1시간반 정도의 국정연설은 내용도 좋았지만 분위기가 더 인상적이었다.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말로 모든 것을 자세하고 진솔하게 설명했으며 내용에 따라서는 정책담당자를 소개해 신뢰감을 높였다. 클린턴 대통령도 개인적으로는 윤리문제로 법정에 설 가능성도 있고, 재선과정에서의 불법정치자금 모금문제로 스캔들에 휘말릴 개연성이 우리보다 더 하다. 미국경제의 호황이 그의 재선을 도왔다고는하나 아직도 막대한 재정적자를 균형시켜야하며 바닥난 기금으로 사회보장과 이민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등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미래에 역점을 둔 솔직한 연설이 여소야대의 의회는 물론 국민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외압에 짓눌린 경제 앞으로 21세기까지 1천일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이 귀중한 시간을 정쟁으로 소모할 수는 없지않느냐면서 그 시간을 3분의 1씩 쪼개어 값지게 사용하자고 호소했다. 그 세가지로 첫째, 교육 둘째, 최강의 경쟁력 셋째, 재정균형 등을 들면서 구체적인 처방을 제시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지난 4년간 국정운영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개인적 구설수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대응하는 모습이었다. 우리의 정치는 권위와 형식이 지배하고 경제는 돈의 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안정된 정치와 경쟁력 있는 경제운영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 정치인이 말을 다반사로 바꾸고 기업은 망해도 기업인은 떵떵거리며 사는 풍토가 비리를 재발케하는 원인이다. 사정의 칼을 휘두르면서도 사건이 노출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아 은폐와 왜곡을 능사로 삼는 풍토가 형성돼 버린 것이다. 한보사건은 비리의 규모도 문제지만 같은 사람이 같은 비리를 다시 저질렀다는 것이 문제다. 미국에서는 부도를 낸 사람은 사법처리를 받지 않더라도 금융시장이 그와 거래를 하지 않는다. 부도는 신용면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부도를 내도 법정관리로 이자를 탕감해 사업을 소생시켜주고 사법처리를 당했다해도 시간이 지나면 금융거래도 허용돼 간이 큰 사람일수록 부도를 반복한다. ○은폐 반드시 처벌해야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보사건은 사업의 타당성이 가장 큰 문제다. 타당성만 있다면 정치적으로 이용할게 아니라 철강산업으로 육성하면 된다. 그러나 사업의 타당성은 검증되지 않았다. 철강산업이 아무리 중요하다해도 대규모 투자가 소요되는 거대 장치산업인데 사업의 타당성 검토없이 대출이 이뤄진 것은 범죄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것이 몇몇 힘있는 특정인의 독단에 의한 것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제 금융산업은 다시 태어나야한다. 무엇보다 정책당국이나 권력의 금융시장에 대한 개입을 차단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한보사건에 개입한 외압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져 처벌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천만금의 뇌물 못지않게 한마디의 거짓말이 더 강력히 응징돼야 함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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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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