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나 없이 벤처대박에 정신을 내놓고 있지만 소음 가득한 공장을 돌리면서도 부품·소재업체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 국가경제의 근간이 이곳에서 시작된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큰 돈을 버는 업종은 아니지만 꾸준히 이익이 나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혁신적인 사고를 접목시켜야 한다는 부분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부분이다. 지난 2년여동안 혹독한 IMF시련을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한세전자(대표 권준상). 이 회사는 직원 63명이 자동카메라와 가정용 비디오폰의 핵심모듈을 만들어 한해 180억원 가량의 매출을 국내외에서 올리는 작지만 탄탄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최근 자체브랜드의 완제품을 만들어 매출을 늘리고 있다. 아직 초기단계라 부품(모듈)과 완제품의 매출비중이 8대2 정도지만 적어도 연말까지는 5대5까지 맞춰볼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매출은 250억원으로 껑충뛴다. 당연히 순이익도 늘어날 것이다. 한세전자의 달라진 모습은 완제품 조립라인을 소사장제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조립라인을 별도의 회사로 분리시켜 OEM 납품을 받는 형식을 취했다. 한 관계자는 『분사를 통해 관리비용을 줄였고 분사회사는 자체사업을 한다는 자부심에 원가절감에 매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공단내 우경테크(대표 문덕윤)도 비슷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반도체제조 공정중 몰딩 등을 하는 장비의 금형부분만을 만들었던 이 회사는 지난해 말부터 어엿한 장비회사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개발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장비개발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정부정책자금도 끌어다 쓰고 증자도 했지만 항상 돈이 모자랐다』며 『장비를 만들었는데도 처음에는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때문에 대기업에서 사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우경테크는 과감한 투자를 했다. 96년 28명이었던 인원을 두배 가까운 50여명으로 늘렸다. 연구개발비도 100% 중액했다. 덕분에 10억원을 밑돌던 매출이 작년 하반기 급격히 늘더니 26억원에 달했다.
이 회사는 올해 더욱 달라질 전망이다. 반도체칩을 플라시틱패키지로 만들고 있지만 크고 무거워 필름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에 맞춰 시작한 필름패키지장비 개발이 마무리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스피커전문업체인 한국음향(대표 김지택)은 제조기술개선·품질고급화로 해외시장을 뚫고 있다. 김지택사장은 『품질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지난해 미국 GM으로부터 연간 150만달러어치에 달하는 스피커를 3년동안 공급키로 하는 계약을 따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180여명이 연간 33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반월공단에 있는 우성다이캐스팅(대표 김재응)은 5년전 진공다이캐스팅 공법을 상용화해 지금까지도 꾸준한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는 VTR의 가장 중요한 부품인 헤드드럼을 월 200만개씩 생산하며 국내시장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진공다이캐스팅 공법이란 알루미늄 용탕을 금형공간 내로 주입하기 전이나 주입하는 중에 발생되는 가스를 진공감압에 의해 배기시키면서 용탕을 금형내로 주입시키는 방법이다. 우성이 이 공법을 개발하기 전에는 필요한 부품을 전량 일본에서 수입해 쓰던 실정이었다. 지금은 국내 가전 빅3로 불리는 삼성·LG·대우전자가 모두 우성제품을 쓰고 있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165·295톤짜리 다이캐스팅 기계 두대에 직원 7명으로 시작했던 이 회사는 진공공법이 승승장구하면서 97년 대지가 800여평이나 되는 지금의 공장으로 이전할 수 있었다. 지난해 2월과 5월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8,9호기를 증설하면서 제2공장(대지 1,622평)도 지었다. 설비자동화에도 주력해 위험한 공정을 처리하는 다관절로보트를 4대나 보유하고 있다. 우성은 97년 로컬수출액이 100만달러를 넘었고 국제통화기금 체제에 있던 지난해에도 300만달러의 수출을 기록하며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지난해는 400만달러 로컬수출을 비롯해 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부품·소재업체들도 이렇듯 변화를 꾀하고 있다. 설계도면 하나만 받으면 몇년씩 걱정하지 않던 시대는 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위기끝에 희망이 있다」는 말을 새기고 있다. 외환위기를 견디면서까지 살아남았다는 긍지를 가지고 있다. 자체기술과 공정혁신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바라보고 있다. /박형준
기자HJPARK@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