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 실화를 영상화 하는 것은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칫 사건을 원색적으로 다뤘다가는 생존자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줄 수도 있고 영화 자체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부분 감독들은 사건을 최대한 객관화해서 이 문제를 피해가고자 한다. 1992년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다룬 '그놈 목소리'는 이와 또 다른 접근을 한다. 영화는 당시 피해자들의 아픔을 최대한 가까이서 절절이 묘사한다.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막막함, 범인에 대한 무한한 분노, 그리고 끝내 다가오는 절망. 여타 실화 소재 영화들이 사건이 일어난 사회적 맥락에 집중하는 것과는 달리 박진표 감독은 사회적 분석은 최대한 생략한 대신 이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을 시도한다. 그리고는 관객에게도 같은 점을 요구한다. 당신들도 이 부모의 아픈 마음을 느껴보라고. 그리고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라고. 작품은 유괴사건이 일어나고 소년이 사체로 발견되기까지의 44일간의 과정을 따라간다. 9시 뉴스 앵커 한경배(설경구)와 그의 아내 오지선(김남주), 그리고, 그의 10살 난 아들 상우. 남부러울 것 없이 단란한 삶을 살고 있는 이 가족에게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비극이 닥친다. 외아들 상우가 정체 모를 남자에게 유괴된 것. 곧 범인에게 전화가 오고, 그는 감정 하나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부모에게 돈을 요구한다. 그로부터 애타는 44일이 계속된다. 범인의 협박전화는 계속되고 아이를 찾겠다 약속했던 경찰들의 수사도 지지부진하다. 결국 사건은 비극을 향해 계속 달려간다. 영화는 사건을 가능한 한 사실적으로 접근한다. 몇몇 영화적 윤색은 있지만 기본 얼개는 거의 같다. 게다가 영화 속 범인의 목소리, 즉 '그놈 목소리'는 실제 사건의 그것과 거의 같다고 봐도 좋다. 감독은 관객들이 실제 범인에게 분노할 수 있도록 최대한 전화 속 실제 목소리와 같은 연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영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인 강동원도 가능한 기교 없이 충실히 범인의 목소리를 재현했다. 사건의 충실한 재현을 통해 곧 공소시효가 끝나는 이 사건의 재검토를 이끌어내고 싶다는 감독의 의도는 상당부분 적중했다. 영화는 보는 이의 분노를 자아낼 정도로 절절하고 피가 끊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쉬움은 대부분 영화적 윤색을 한 몇몇 부분에서 드러난다. 9시 뉴스 앵커라는 주인공의 직업은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는 필수적일 수 있겠지만 영화의 사실성에 작은 흠집을 낸다. 평범한 가장의 아이가 납치된 사건과 명사의 아이가 납치된 사건은 관객이 느끼는 무게와 심각성에서 큰 차이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너무나도 미숙하고 바보스럽기까지 한 수사경찰들의 캐릭터도 아쉬운 부분. 절절한 감정이 흐르는 영화의 내용에 약간 코믹하기까지 한 경찰들의 스토리는 영화와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차라리 이 같은 윤색을 줄이고 극사실화를 밀어붙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