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비정규직 문제 해결하려면

이강성 <삼육대교수·경영학>

하투(夏鬪)의 계절이다. 이 중심부에는 올해 산업계의 노사관계를 가름할 자동차 업체들의 임금 및 단체교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가 교섭의 가장 우선 조건으로 내세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 철폐’ 문제를 놓고 노사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큰 마찰이 예상된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산업 현장에 비정규 근로자가 급격히 늘어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 과정에서 큰 홍역을 치렀던 기업들은 고용조정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경기변동에 따라 인력을 용이하게 조정할 수 있는 비정규직을 늘려왔다. 노동조합도 조합원들인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보호막을 치는 차원에서 이 같은 회사 측의 고용전략을 묵시적으로 동의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실례로 현대자동차는 지난 2000년 6월에 노사간 완전 고용보장 합의서를 체결하고 비정규직을 일정 비율로 유지하는 선에서 회사가 하도급 근로자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나치게 높은 임금 부담을 줄이고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효율성을 높이려는 경영자 측의 욕구와 대기업 노조의 이해타산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국내 자동차 업체들은 인력의 배치전환이 꼭 필요한 경우라도 단체협약 규정에 의해 노동조합의 협조 없이는 이것이 불가능하게 돼 있다. 한쪽 공장에서는 생산물량이 없어 인력이 남아돌고 다른 공장에서는 생산물량이 너무 많아 연장ㆍ야간근로를 계속해도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인데도 배치전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더 많이 채용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비정규직 급증의 주요 원인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고용경직성과 높은 인건비 부담, 그리고 불합리한 내부인력 운영 등의 문제에서 비롯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조차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오히려 정리해고 조건을 완화해 고용유연성이 제고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높은 인건비와 고용상의 문제는 기업으로 하여금 생산시설을 임금이나 노동조합의 압박이 적은 동남아 국가로 이전하게 하는 동인(動因)이 돼 국내 산업의 공동화(空洞化) 우려를 낳고 있다. 결국 고용 없는 성장을 가져오게 됐고 정규직 근로자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높은 임금을 받게 됐지만 오히려 일자리는 줄어 청년실업자가 넘쳐나게 됐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완전 정규직으로 고용하거나 정규직과 동등하게 임금 및 근로조건을 상향 조정해달라고 하는 노동조합 측의 요구는 너무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만 하더라도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를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인건비와 복리후생 비용 등을 포함해 약 3,000억원의 추가 부담이 생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해마다 늘어나는 인건비와 노사갈등, 신규채용 억제 등 유ㆍ무형의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기업의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는 현대자동차 개별 기업의 경쟁력뿐만 아니라 자동차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국가경쟁력의 추락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다. 올해 초 노사합의에 의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수출입은행의 사례를 보자. 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낮추고 임금체계를 변화시킴으로써 경영진은 인건비 부담을 줄일 수 있었고 그 여력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할 수 있었다. 해결의 핵심 열쇠는 정규직의 양보였다. 결국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처우개선 문제는 과도하게 높은 정규직의 임금 수준을 우선적으로 안정시키는 등 기득권의 적절한 양보가 전제돼야 해결 가능하다. 또한 사용자는 직무의 차이(difference)가 아니라 차별(discrimination)에 의한 비정규직의 지나친 처우 격차를 시정해나가야 한다. 명분이나 자신의 이익만을 중시하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노동조합과 사용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지혜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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