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기로에 선 중국 경제] <5> 과잉생산의 덫

"고용·부실문제 커질라"… 지방정부·은행, 기업 구조조정 머뭇

중앙정부 폐쇄 압박에도 철강사 "버티고 보자"

세계 소비 2위 자동차까지 공급과잉 그림자

"투자에 의존 경제구조 못바꾸면 해소 힘들어"

중국 정부가 과잉생산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고용 문제, 은행 부실 등과 연결돼 있어 속도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대표적 철강도시 허베이성 탕산시의 탕산철강 2번 고로. /탕산=김현수특파원


지난 6일 허베이성 탕산시 철강공단. 이 공단에서 생산된 건설용 철근을 가득 실은 대형 화물차가 지나가며 흙먼지를 내뿜는다. 세계 2위 철강그룹인 허베이강철그룹의 탕산철강을 지나 소규모 민영 철강업체들이 모여 있는 지역을 찾았다. 구조조정으로 멈춰선 철강업체를 취재하고 싶다고 하자 동행한 철광석 수입업체 관계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폐쇄했다고 보여주지도 않겠지만 문 닫은 업체가 실제로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만난 다른 민영 철강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말 공장폐쇄에 대한 압박이 강했지만 올 들어서는 잠잠하다"며 "다들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것 같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탕산의 철강 과잉생산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장칭웨이 허베이성장이 3년간 1억톤의 철강설비를 줄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민영업체들은 여전히 버티고 있다.


과잉생산은 중국의 덫이 됐다.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고용을 무시하고 구조조정의 칼을 마냥 휘두를 수만은 없다. 과잉생산 업체에 대출해준 은행도 난감한 처지다. 부실기업에 흘러가는 돈줄을 막으라는 정부의 지시를 곧이곧대로 이행했다가는 엄청난 부실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위용딩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교수는 "중국 정부가 직면한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과잉생산"이라며 "과잉생산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투자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바꿔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한쪽을 줄이면 다른 쪽의 과잉생산을 유발하는 풍선효과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과잉생산 해소되고 있나=3월 글로벌 투자은행(IB) 두 곳이 탕산의 철강산업 구조조정에 대해 정반대의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모건스탠리가 "오염통제와 빡빡한 자금압박으로 과잉생산 설비가 폐쇄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자 곧바로 크레디리요네(CLSA)는 "그런 일이 없다"고 반박했다.

대형 IB가 왜 같은 사안을 두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을까. 여기에 중국 과잉생산 구조조정의 문제가 그대로 나타난다. 제강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오염시설을 폐쇄하고 있다는 모건스탠리의 언급에 대해 탕산 지역 철강 트레이더들은 이미 계획된 노후설비 교체일뿐이라고 일축한다. 200만톤의 설비를 폐쇄한 마안산철강도 신제철 설비 증축을 위한 노후설비 교체였다고 주장했다. 철강생산 감소를 위한 전력감축도 일부 제철소들이 심야전기 요금 할인과 오염조치 최소화 혜택을 위해 주간 대신 야간에 공장을 돌리면 나타난 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심상형 포스코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올해 말까지 구조조정의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기는 어렵다"며 "생산을 줄이면서 신규 증설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국영 철강업체 중심의 인수합병(M&A)을 통해 철강 과잉생산을 해소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경영규범 리스트를 만들어 한계기업에 대한 대출과 지원을 중단했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뜻과 다르게 움직인다. M&A를 통해 몸집을 키운 허베이강철도 추가 인수에 부정적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부도를 낸 하이신철강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중국 철강 과잉생산의 정책방향이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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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린 정부·은행=중국 정부가 환경규제라는 칼을 빼들고 철강업체들의 구조조정을 압박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과제다. 오는 2017년까지 허베이성에서 8,000만톤, 산둥성에서 5,000만톤을 감산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설비는 물론 인력도 감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콧 랩라이즈 CLSA 애널리스트는 "중앙정부가 구조조정을 압박하고 있지만 세수와 실업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도 과잉생산 업종인 철강의 구조조정을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기가 살아나면서 구조조정을 한다면 속도와 효과가 있겠지만 경기가 하락하면 구조조정의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은행들도 과잉생산에 발목이 잡혀 있다. 탕산시의 대부분 민영 철강업체들은 철광석 수입 신용장(LC)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유동성을 확보했다. 물론 최근에는 구조조정 대상 철강업체에 대한 대출을 제한하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철광석 담보 대출은 여전히 가능하다고 탕산 지역 철광석 수입업자들은 말한다. 문제는 철광석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 입장에서 담보물의 가격이 떨어지면 부실채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탕산시 공상은행 관계자는 "지방은행들의 철광석 LC 담보대출이 많다"며 "자칫 과잉생산 구조조정이 은행의 부실확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급과잉 그림자 자동차까지=8일 보아오포럼 개막식. 예상치 못한 논쟁이 일었다. 지난해 생산량 2,000만대, 세계 소비 2위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가진 자동차산업이 과잉생산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대해 쉬허이 베이징자동차그룹 이사장은 "중국인 1,000명 당 자동차 보유대수는 70여대로 주요국에 비해 턱없이 적다"며 중국 자동차 업계의 생산과잉 가능성을 반박했다.

하지만 포럼에 참석한 경제전문가들은 쉬 이사장의 의견을 재반박했다. 인구뿐 아니라 자원소모량 등 다른 변수들을 고려했을 때 이미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최고점에 달했고 곧 과잉생산 문제에 직면할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국 자체 자동차 업체는 경쟁력 저하로 과잉생산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공업정보화부도 중국 내 49개 자동차 업체에 강제 구조조정 명령을 내린 상태다. 실제 중국 국내 자동차 업체의 설비 가동률은 2010년 85%에서 2012년 59%까지 떨어졌다.

반면 상하이폭스바겐·상하이GM 및 베이징현대의 설비 가동률은 모두 70% 이상이다. 주푸서우 둥펑자동차 사장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서 생산과잉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방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무분별하게 육성하고 기업도 단순한 수요증가와 정부의 혜택에만 기대 생산량을 무분별하게 확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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