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라크 전쟁이후] 4.다시 짜는 국제경제질서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사실상 종결된 대 이라크전은 글로벌 경제 질서에서 새로운 패턴의 지각 변동을 낳고 있다. 즉 절대 우위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국제 정치에서의 미국의 패권주의가 경제 질서에까지 확대돼 기존 체제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 양대축인 미국과 유럽간의 더욱 노골화된 세계 경제 주도권 싸움으로 경제 질서가 극도의 긴장관계에 돌입할 것이며 한편으론 다자간 통상 기구인 WTO 체제마저도 위협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 유럽 경제 블록화 심화=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유럽 양 대륙간, 혹은 이라크전 지지국-비지지국간 경제 마찰은 한마디로 이라크전으로 노골화된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해당국들의 도전으로 규정된다. 우선 미국과 유럽 양측의 힘 겨루기는 이미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우선 향후 국제 정세의 최대 이슈로 떠오를 이라크 개건 문제에서 미국과 유럽의 갈등은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 미국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유럽의 반전국들에게 이라크에서 받아야 할 채권을 포기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전후 복구사업에 있어서도 유럽 기업들의 참여를 봉쇄하고 있다. 승전국으로서 모든 경제적 이권을 독식하겠다는 셈이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은 유럽 반미(反美) 진영의 단결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기축통화 자리를 놓고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달러화의 유로화의 헤게모니 싸움도 그중 하나. 반세기가 넘게 세계 유일 기축 통화로 군림해온 달러화 덕분에 미국은 천문학적 재정ㆍ경상 적자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누려왔다. 하지만 그간 이라크전 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가려져 있던 미 경제 펀더멘탈의 허약함이 재차 불거지면 세계 투자자금이 유로화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유럽연합(EU)의 지원하에 일부 중동국가들이 석유결제수단으로 유로화를 사용하려는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대목이다. 결국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선 유럽의 다자주의로 경제 블록화라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질서가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경제 블록화는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기업의 비용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전체가 상호대립토록 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WTO 체제 붕괴로 세계화 구도 종지부= WTO 중심의 세계 통상 체제에서도 혼란과 불안정의 파고가 몰아칠 것으로 우려된다. 세계 각국은 그간 WTO를 통해 공정하고 자유로운 통상 질서의 규범을 세워 나갔다. 하지만 이번 이라크 공격과정에서 드러나듯이 국제연합(UN) 무력화로 말미암아 다자간 통상기구인 WTO의 권위도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다자간 협의체인 WTO의 정신 대신 국가간 상호관계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국제 통상 질서가 형성될 것으로 감지되고 있다. 이미 세계 최대 교역국인 미국 일각에서는 WTO의 미국의 철강세이프가드조치(긴급 수입관세부과)에 대해 부당 판결을 문제 삼아 통상 질서에서의 국제기구 무용론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5년 새로운 통상 질서 출범을 목표로 한 도하라운드 협상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WTO 체제 붕괴 가능성과 무관치 않다. 결국 다자간 협력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제 통상 시스템 마련이 어려워지면서 미국은 개별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한편 중남미로 자유무역지대를 확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맞불작전에 나선 유럽 또한 다른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을 파트너로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왜곡된 FTA 구축은 여러 나라가 참여하는 WTO 중심의 다자 무역체제의 토대를 와해 시킴과 동시에 90년대 전세계적 경제 활황을 이끌었던 세계화 구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운식기자 woolse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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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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