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금융전문지인 ‘더 뱅커(The Banker)’는 매년초 세계 500대 금융브랜드(Top 500 Global Financial Brands)를 발표한다. 이 랭킹은 굵직한 글로벌 금융비즈니스를 펼칠 때 상당한 ‘명성효과’를 발휘한다. 올해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중국의 공상은행과 건설은행, 중국은행이 100위권에 포함됐다는 것. 글로벌 플레이어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반면 국내 금융기관 가운데 100위 안에 든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500위권 안에도 지난해에는 국내 13개 금융사가 포함됐지만 올해는 5개에 그쳤다. ◇글로벌 경쟁력은 브랜드 강화에서 출발해야= 국내 은행의 브랜드 경쟁력은 슬금슬금 악화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덩치 경쟁이지만 이에 못지않은 것이 금융서비스 내용과 고객 충성도 등 질적인 부문에서의 경쟁력 약화다. 국내에선 내로라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무대에는 한 발짝도 나서지 못하고 있다. 국경없는 무한 경쟁이 금융부문에서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금융의 브랜드 경쟁력 강화는 무엇보다 시급하다. 더 뱅커가 은행들의 브랜드 가치를 산정하는 기준은 과거 재무 데이터뿐 아니라 미래 실적 추정치와 고객서비스, 명성, 로열티(고객충성도) 등. 이를 개인금융ㆍ기업금융ㆍ투자금융ㆍ자산운용ㆍ신용카드 등 브랜드 별로 계량화 해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실적이야 덩치 경쟁이지만 나머지 영역은 금융서비스의 질과 금융기관의 진정성에 연동된 지수로 이해하면 맞다. 국내 금융기관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추진동력은 바로 금융서비스의 질과 진정성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국내 은행들이 금융소외계층 등을 포함한 서민금융 서비스를 보다 질 높게 제공해 달라는 사회적 요구는 이 때문에 은행의 브랜드 가치 상승하고도 직결돼 있다. 서울경제신문이 지난 10월25일부터 이달 3일까지 주요 금융기관 및 비금융사의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현재 금융기관들이 공공재적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62.4%가 ‘그저 그렇다’라고 답했다. 국내 은행들도 2006년부터 은행 사회공헌협의회를 설치하고 연간 사회공헌 실적을 공시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하고 있지만 해외 선진금융회사에 비해선 미흡하다는 평가다. 해외 선진금융회사의 경우 최고경영자(CEO)및 이사회를 중심으로 체계적인 지속가능 경영시스템을 구축해 사회공헌활동을 포괄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은행의 사업구조상 향후에도 고객확보가 가장 중요한 경쟁력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사회공헌활동을 현재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진정성 담아야 평가가 달라진다= 서울경제가 이번에 실시한 설문에서는 금융기관의 사회공헌에 대한 진정성이 상당히 의심받고 있었다. ‘국내 은행 및 금융지주회사들의 사회공헌활동이 어느 정도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평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설문 응답자들의 78.7%가 “금융사들이 정부나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하고 있다”고 답했다. 금융권의 사회활동에 대해 ‘고맙지만 그리 크게 고맙지는 않다’는 반응이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은행들은 수익구조상 크게 차별화되지 않았고 해외진출 또한 활발하지 않아 국내고객을 대상으로 비슷한 영업을 하고 있다”며 “이런 시장상황이라면 향후 국내 고객확보가 국내은행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설문에서는 또 ‘국내 금융회사의 브랜드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33.1%가 “투명하지 못한 경영 및 주주가치 무시”라고 답했다. 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은행이 기업으로서의 가치를 증진시키고 예금주 등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좀더 나은 서비스와 브랜드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선택을 적절히 견제하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