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의 ‘The Fragile(유약한 것들)’ 展이 갤러리 도스에서 펼쳐진다.
이은경 작가는 갤러리 도스에서 ‘고(高)리(理)’를 주제로 하는 릴레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가로서 물질을 통해 작품을 표현한다. 고리는 무엇과 무엇을 연결해주는 장치의 의미도 있지만 작가의감각 고리와 높을 고, 다스릴 이의 한자를 이용한 높은 이상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다.
현미경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확대하여 관찰하도록 도와주는 실험기구다. 그 너머로 보이는 건 평소에 볼 수 없던 것들의 세밀한 일부이며 미지의 세계로의 시작점이다. 이런 현미경의 기능과 형태는 이은경의 작업에서도 유사한 맥락으로 적용된다.
이은경의 소재는 도시에서 흔히 접하는 상업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다. 언제 어떻게 바스러질지 알 수 없는 이미지는 언뜻 보기엔 완벽한 상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허망할 정도로 쉽게 생성되고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도시의 허물과 같다. 작가는 그 이미지들의 군상 속에서 표본을 채취하듯 부분을 떼어 캔버스 위로 옮긴다. 캔버스의 원형 포맷은 작가에겐 현미경의 렌즈이자 표본접시로 기능한다. 미디어가 갖고있는 일회성의 이미지에서 추출된 파편들은 이렇게 작가의 현미경 안에서 재조명을 받고 마치 변이하듯 또다시 새로운 이미지를 재생산해낸다. 그것이 다층의 레이어 안에 옮겨지는데, 이 과정에서 작가는 현대의 재료가 아닌 에그 템페라와 수제 제소라는 흔치 않은 매체를 택한다. 중세부터 쓰인 에그 템페라와 석고가 섞인 수제 제소라는 재료 둘 다 탄성이 부족하고 충격에 약해 균열을 일으키기 쉽다는 특성을 갖고있는데 이런 단점이 작가에겐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점으로 돌변한 것이다. 재료의 특성상 드러나게 되는 물질적 불완전성은 작가가 생각했던 이미지의 연약함을 잘 살려내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져가는 소멸과정에 더 극적인 연출을 더한다.
수집된 이미지들의 파편은 물감층과 융합되면서 대량 인쇄되는 구조에서 회화의 물리적 구조로 그 경계를 넓혀나간다. 이는 실제로는 눈앞에 없으나 존재하는 것 같은 환영에 대한 해부학적 분석을 시도하면서 그것이 본래 갖고 있던 이미지 고유의 유약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표면을 벗겨 내는 듯한 표현은 환영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생성과 소멸의 틈을 벌려 관람자가 상상할 수 있는 여유분의 공간을 만든다. 기성 이미지들의 조각들로 만들어진 새로운 환영과 그 위에 끝없이 반복 되어지는 ‘지워지는 과정’은 그 작품이 갖고있는 다양한 시간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관람자가 직접 작품을 손으로 만져보도록 허용함으로써 공감각적인 여지를 남겨두고 있으니 이런 상황의 설정이 이번에는 어떤 효과를 도출해낼 수 있을지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이은경의 ‘The Fragile(유약한 것들)’ 展은 12월 28일부터 1월 3일까지 삼청로에 위치한 갤러리 도스에서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