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데스크 칼럼] 개각과 충성심

우리나라 만큼 지역문제가 복잡미묘한 나라도 드물다.개각때마다 지역안배는 중요 고려대상이 된다. 지역안배 보다는 개혁성 전문성 참신성을 중점 고려했다는 이번 개각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번 개각에서 지역문제의 복잡성을 상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김태정(金泰政) 법무장관과 정덕구(鄭德龜) 산자부장관의 출신지가 언론에따라 다르게 보도됐다. 어느 신문은 출생지를, 다른 신문은 원적지를 출신지로 보도했다. 金장관의 경우 전남장흥이 고향인 부친이 관직을 따라 부산에서 근무할때 그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고, 중·고등학교는 호남에서 마친 것으로 돼 있다. 그런 그에게 출신지를 묻는 것이야말로 부질없는 짓이다. 좁은 땅덩이에서 식민지시대와 6.25전쟁, 산업화라는 격동의 세월을 살면서 태어나고 성장한 곳을 달리하는 사람은 부지기수 일 것이다. 당대에도 그럴진대 대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출신지를 따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 한지를 누구나 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정부의 입장에서 金장관의 출신지가 어디냐는 것은 결코 해프닝일수 없다. 부산으로 치면 호남출신이 하나 줄어 지역안배를 잘 한 것이 되고, 호남으로 치면 호남편중이 여전한 것으로 보는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이 여기에 이른 배경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87년 대선때의 일을 예로 들어보자. 경남출신 장관 한 분이 선거지원에 나서 「호남이 싹쓸이」발언을 했다. 이 발언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 장관은 사표를 내야했다. 후임자로 건설행정과는 이렇다할 인연이 없는 당시 총무처 소청심사위원장이 발탁됐다. 지역감정문제로 여론이 들끓던 때였는지라 후임자가 호남 출신이었던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발탁 배경을 취재해본 결과 어이없게도 당시 호남출신으로 장관승진 대상인 차관급이상 현직공직자가 그 분 뿐이었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다. 金법무장관이 2년전 검찰총장으로 임명됐을때 언론은 「최초의 호남출신 총장」이라고 보도했다. 특정지역 출신들이 고위공직에서, 또 정부의 특정 부처청의 장(長)에서 그렇게 오래 배제됐던 것은 군사정부시절 이래로 한국적 비극이었다. 정부의 부처청 가운데 공권력 행사가 직접적인 이른바 권력기관 또는 실세기관이 있다. 경찰·검찰·국방부·국정원 등 공안부처와 국세청·재경부 등 예산부처가 거기에 속한다.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필하는 청와대 비서실도 빼놓을 수 없다. 역대 정부의 이들기관에 대한 인사관행을 살펴보면 대통령과 같은 지역출신인사를 앉히는 경향이 짙었다. 대통령도 국정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고 이를 적기에 조달·집행할 사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 대통령들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탄압하는데 채찍을 많이 썼는데 정치적으로나 사법적으로 무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같은 일을 수행하는 자리의 장을 고름에 있어 개인적인 충성심이 무엇보다 중시되었을 것이고 그과정에서 동향(同鄕)을 충성심의 인자로 활용했던게 아닌가 한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이번 개각및 차관급 인사에서 드러난 특징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1기 조각때 호남편중론의 유력한 반론근거였던 국정원장과 청와대비서실장 가운데 국정원장이 호남출신으로 교체됐고, 검찰총수를 비호남 출신에서 발탁한 점이다. 그러나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이 金법무부장관과 함께 DJ비자금수사 보류의 주역이었던 점을 발탁의 배경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충성심을 발탁의 기준으로 삼는데는 과거 정부와 마찬가지라는 얘기이다. 또 하나 내각에서 전반적으로 지역안배를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경제부처, 특히 예산부처에 호남출신들을 집중 발탁한 점이다. 1기 조각때 자민련에 맡겼던 나라 곳간 열쇠를 회수한 결과이긴 하지만 재경부장관 기획예산처장관 청와대경제수석 국세청장이 모두 호남출신이다. 김중권(金重權) 청와대비서실장은 이번 개각이 개혁의 마무리를 위한 능력위주 인사라고 말했다. 개혁의 마무리는 경제정책에 달려있기 때문에 이들간의 원만한 정책조율은 특히 중요하다. 과거같으면 「노른자위 독식」이라는 평을 들을 법도 하지만 아직 잠잠한 것은 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임종건 편집국차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