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만 해도 매매계약이 활발하게 이뤄져 토요일 밤과 일요일까지 상담을 받고 계약을 체결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한 달 사이에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이달 거래량은 지난달의 20% 수준밖에 안되고 국내외 경기전망도 불확실해 당분간 상황이 호전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박준 잠실동 잠실박사 대표)
지난주 말 찾은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인근의 중앙상가 건물. 부동산 중개업소 38개가 밀집된 곳이지만 방문고객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었다. 문의전화도 오지 않아 적막한 분위기마저 흘렀다. 잠실동 P공인의 한 관계자는 "이달 들어 거래된 4건 모두 10월 초에 이뤄졌고 이후에는 거래가 중단된 상태"라며 "지난달에는 19건이 거래되면서 분위기가 좋았는데 다시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거래공백이 현실화하고 있다. 재건축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 9·1대책의 영향으로 지난 9월 한 달간 실거래가 늘고 매도호가가 상승했지만 추격 매수세가 붙지 않아 거래가 사실상 '올스톱' 된 상태다. 일부 단지에서는 시세조정이 이뤄지고 있으며 매도자와 매수자의 간극이 여전히 큰데다 경기전망의 불확실성도 높아지고 있어 당분간 거래 활성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이미 가을 이사철도 끝나가고 있어 매매전환 수요에 따른 거래도 한계를 보일 것"이라며 "유럽과 중국의 경기침체로 유가가 하락하고 증시가 곤두박질치는 등 '외풍'이 심상찮아 부동산시장을 전망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투자수요가 집중되는 강남 재건축 단지에서 거래공백에 따른 시세조정이 뚜렷한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잠실동 주공5단지의 경우 한 달 사이 시세가 3,000만원가량 하락했다. 지난달 11억6,000만원에 거래됐던 이 단지 76㎡(이하 전용면적)는 현재 11억3,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고 82㎡도 13억원에 실거래되다 이달 들어 12억7,000만원으로 하향조정됐다.
저층 재건축 추진단지인 개포동 주공1단지 역시 이달 들어 호가가 3,000만~4,000만원 급락하고 있지만 매수세가 따라붙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지역 M공인의 한 관계자는 "대출부담이 큰 사람들이 급매물을 내놓고 있는데도 거래절벽이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거래공백과 시세하락은 강남권뿐 아니라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성북구 돈암동 한진아파트 59㎡는 보름 전 2억4,000만원에 매매전환이 이뤄졌지만 이후 추격 매수자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노원구 상계동 주공5단지 32㎡도 이달 4,000만원 오른 2억1,000만원에 실거래가 이뤄진 후 지금은 수요자들의 발길이 끊긴 상태다. 인근 H공인의 한 관계자는 "전세가율이 높아 전세입자들이 매매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2주 전부터 조용해졌다"고 전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국내외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거래공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김규정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정부가 금리를 추가 인하한 것은 그만큼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방증"이라며 "부동산과 궤를 같이하는 주식시장이 하락하면 부동산 매매수요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