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상식과 순리

정기홍 <서울보증보험사장>

‘상식과 순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가장 기본이 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욕심은 세상을 순리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질 않는 것 같다. 봄이 다가오는 소리를 음미하며 즐겁게 나선 출근길이 도시 재개발 지역을 지날 때쯤에는 불쾌감으로 엉망이 돼버린다. ‘결사 반대’ ‘투쟁’ ‘쟁취’ ‘사수’ 등 듣기에도 섬뜩한 구호들이 뻐얼건 깃발 아래 흉물스럽게 나부끼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가꾸어왔던 소중한 보금자리를 떠나야 하는 아픔과 내일의 삶의 터전을 위해 토지 보상금에 목을 매는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웃들과 함께 누려야 할 쾌적한 환경을 해치면서까지 극한 방법으로 치닫는 모습은 왠지 눈에 거슬리고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왜 이런 일들을 순리대로 풀지 못하고 극한으로 치달아야 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모두가 인간의 지나친 탐욕 때문이리라. 부자는 더 많이 챙기고 싶어하고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도한 욕심을 부리게 되고 상식적으로 허용이 안되는 일을 해내려고 애를 쓴다. 안되는 것을 하려고 하면 무리가 따르고 무리는 때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비화해 세상 사람들의 기운을 쏙 빠지게 한다. 핵심 요지에 알 박은 땅을 사놓고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고 끼니를 걱정하는 불우 아동들의 도시락에까지 손을 대며, 보험금이 욕심나 멀쩡한 차를 들이받고 우격다짐을 하는 등 시커먼 탐욕은 끝이 없다. 우리는 어쩌면 옳은 일과 그른 일,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착한 것과 악한 것들을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빨리 자정능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불의와 불신이 난무하는 볼품 없는 세상이 돼버리고 말 것 같다. 이제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듯이 상식에 맞게 판단하고 순리에 따라 행동할 때가 된 것이다. 가끔씩은 우리 사회에 상식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을 가질 때도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는 일은 절대 금기였고 식사 중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여자가 섹시하게 보여서도 미덕이 아니고 요조숙녀가 미니스커트를 입는 것은 더더욱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시대에 따라 상식의 모양이 바뀔 수는 있다. 그러나 상식이란 그 성격상 양심을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사회규범으로서의 기본 역할은 변할 수 없다. 상식과 순리가 통하는 사회야말로 법 없이도 정의로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니다. 어려서부터 우리들의 마음과 손에 익어야 한다. 유치원 아이들을 데리고 영어단어 몇 자 가르칠 일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방법’부터 몸에 배게 하는 일이 우선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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