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에게 대지의 제약은 창의력을 발휘할 모티브를 제공한다. 서인건축이 디자인한 평창동 주택 ‘차경제’가 그렇다. 차경제는 북한산 자락의 비탈면에 지어졌다. 대지 모양도 좁고 길다란 직사각형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 같은 제약 속에서 건축가에게 주어진 숙제는 북한산의 풍광을 최대한 집안으로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지키는 것이었다. 개방과 폐쇄라는 양면성을 가진 야누스적인 주택을 만들어야 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약은 오히려 이 숙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비탈면의 바깥쪽으로는 최대한 창을 낸 공동 공간을 위주로, 안쪽으로는 개인 공간을 위주로 배치한 것이다. 비탈면의 특성상 인접한 집들이 다른 레벨에 존재하기 때문에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풍경의 간섭이 전혀 없다는 점도 대지의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된 예라고 볼 수 있다. 건축주의 요구인 세대분리형 주택도 건축가는 비탈면이라는 제약을 최대한 이용해 해결했다. 255㎡로 그리 넓지 않은 대지 위에 3세대가 공존하는 주택을 짓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옆으로 넓게가 아니면 위로 높게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일. 차경제는 이 때문에 3층으로 세워졌다. 지하1~지상2층이다. 지하1층의 전면이 트여 있어 사실상 지상3층 건물이다. 보도로 통하는 현관은 중간층에 있다. 2층인 셈이다. 현관을 들어와 한 층은 올라가고 또 한 층은 내려가 세개 층을 오르내릴 일은 거의 없다. 이 또한 비탈면이 준 이익인 셈이다. 지하1층은 거실과 부엌이 차지하고 있다. 가족 공동 공간이다. 전면에 통유리로 된 창을 내고 창 앞에 널따란 원목 데크를 꾸몄다. 흡사 모던한 카페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1ㆍ2층은 서재와 방들이 배치됐다. 계단과 복도를 제외하고는 공동 공간을 최소화한 게 특징이다. 차경제의 외관은 정방형 블록을 서너개 쌓아 만든 것처럼 언뜻 보면 별다른 멋이 없다. 기능성을 최대한 살려 내부 공간을 먼저 설계하고 외관은 그 결과물에 맡겨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출 콘크리트와 원목이라는 마감재가 단순함과 조화돼 보면 볼수록 현대적인 멋을 뿜어낸다. 내ㆍ외부 마감재가 똑같은 것도 주택 안과 밖의 단절감을 최소화시켜 최대한 자연과 어우러지려는 노력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