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9월 17일] '예산 전쟁' 3라운드

정기국회가 시작되면서 모든 정부 부처들이 연말까지 빠짐없이 치러야 하는 게 '예산 전쟁'이다. 균형예산 편성을 목표로 하는 기획재정부는 먼저 경기상황을 감안, 가능한 세입을 살펴보고 세출의 대원칙을 세우게 되는데 내년 예산안의 키워드는 '친 서민'과 '경기부양'으로 방향이 잡혔다고 한다. 아직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해 복지예산 증액과 일자리 마련을 위한 재원 확보, 수출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사회간접자본(SOC) 확대 등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정된 재원을 감안할 때 여타 분야의 세출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최근 국방예산과 관련한 장차관의 엇박자와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의 부처 간 격론은 앞으로도 '예산 전쟁'이 얼마나 치열할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불요불급 예산은 과감하게 솎고 일단 내년도 예산안이 편성된 뒤에도 '예산 전쟁'은 국회 예결위 심의에서 계속된다. 특히 내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여서 여야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 챙기기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전망된다. SOC사업이 대종을 이루는 지역사업은 현역의원들로서는 엄청난 프리미엄이므로 결코 삭감을 용납할 수 없다. 벌써부터 야당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산은 단 한푼도 깎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물론 정부도 선거가 있는 해에는 비상수단을 마련해놓는 게 관례다. 과거 재정투융자특별회계나 지방양여금 등을 통해 선심성 선거예산을 확보해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회계 삭감에만 관심이 있었던 때 재정투융자특별회계는 소리내지 않고 증액할 수 있는 편법이었다. 주로 지방자치단체의 자체 수익사업으로 재원을 충당하는 일본과는 달리 중앙정부가 예산을 나눠준 지방양여금은 분명 기형화한 지방예산이었다. 통합재정수지까지 관심을 두기 시작한 지난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거의 매년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방법이 동원됐다. 정부는 새해에도 어김없이 '선거 예산'을 위한 터를 닦아놓았다. 내년에 6조7,000억원으로 불어난 4대강 예산의 절반가량을 수자원공사에 떠맡긴 것이다. 하지만 당장 재정부담을 줄일 수 있더라도 결국에는 국민부담으로 남는다는 데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예산 전쟁'의 마지막 라운드는 특별교부금 등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벌어진다. 경기침체로 세수가 줄어들어 올해 엄청난 채권을 발행했던 지자체로서는 새해에도 갖가지 그럴듯한 지방사업을 펼치는 데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매칭 펀드' 형태로 운영하는 지방사업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지방소비세와 지방소득세를 도입해 재정자립도를 높인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지방마다 세수기반이 달라 형평성을 확보할 보완책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사업비 등으로 용도가 정해져 내려가는 분권교부세가 새해부터 보통교부세로 통합 운영된다는 소식에 한동안 요양원이나 재활원 등이 내년 시설운영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생색이 안 나는 곳이므로 지원예산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었는데 결국 분권교부세 운영기간을 5년 연장해 해소됐다. 지자체 내에서도 '예산 전쟁'은 계속되는 셈이다. 나랏빚 줄여 재정건전성 확보를 이 모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경기가 살아나 세수가 크게 늘고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회복이 불투명하고 가계부채와 기업수익 저하로 소비와 투자의 증가를 장담할 수 없다면 정부와 국회로서 할 수 있는 방안은 우선 순위를 엄격하게 정해 불요불급한 예산을 과감하게 솎아내는 일일 것이다. 물론 경기회복 이후 균형재정으로 돌아온다는 전제 아래 재정적자를 묵인하는 방안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 국가채무가 급격하게 늘어 내년에 400조원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재정건전성을 무시하기도 쉽지 않다. 재정건전성은 세계경제가 다시 깊은 늪에 빠질 경우 가장 중요한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예산편성과 심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정기국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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