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4일 아침 전격 사퇴했다. "(중략) 조국을 위해 바치려 했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사퇴의 변을 날렸다. 시작도 안 하고 물러날 요량이었으면 처음부터 왜 하려 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나섰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들어온 인재들을 더 이상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사실 미래부와 김씨는 박근혜 정부의 아이콘 격이다. 다른 정부부처들이야 다 거기서 거기고 장관 후보들도 '그 밥에 그 나물'이어서 단연 김씨의 등장은 그나마 뭔가 변화의 유일한 시그널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물론 새누리당, 그리고 대대적인 투자 확대 예고에 침이 넘어가던 정보통신기술(ICT)업계의 충격이 피부로 느껴진다.
어찌됐든 미국에서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천문학적인 부를 쌓았고 외국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장관 후보가 된 김씨의 중도하차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세계 만방에 드러낸 해프닝이 됐다. 곁가지에 파묻혀 정작 본질을 제대로 따지지 못하다 맞은 이번 사태로 정치는 더 손가락질을 받게 됐다.
여야는 미래부의 방송 규제 권한을 놓고 다퉜지만 국민들은 그저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 정부가 ICT와 기존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나한테 정말 일자리, 그것도 좋은 일자리(decent job)를 만들어줄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국가적으로도 대규모 일자리 창출은 심각한 실업난과 빈곤화, 고용 없는 성장을 막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그렇다면 응당 정치권ㆍ학계ㆍ업계 모두 이 프로젝트의 타당성 여부부터 검토했어야 맞지 않을까. 또 어떤 정책이 일자리 창출에 더 효과적일지를 놓고 갑론을박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게 국민을 위한 정치일 것이다.
새 정부가 막 출범해 판을 벌여보겠다는데 그냥 믿고 맡기지 왜 따지느냐고? 선출 권력에게 전권을 주자는 말에 일리가 없진 않다. 유세 때부터 창조경제 공약이 나왔으니까. 그러나 이전 이명박(MB) 정부는 "전봇대를 뽑겠다"며 재벌단체의 상근 부회장을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떡하니 앉히고 수출 드라이브를 건다며 고환율 정책을 밀다가 중간에 슬쩍 꼬리를 내려버렸다. 애초부터 틀려먹은 처방이었던 것이다.
지난 5년간 삶의 질은 더 나빠졌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때 69.3%이던 중산층은 67.1%로 줄었고 빈곤층은 11.7%에서 12.6%로 늘어났다. MB정부는 정보통신부를 없애고 방송통신위원회를 만들어 정보기술(IT)업계로부터 'IT를 경시하는 토목 정부'라는 비난을 들었지만 인터넷TV(IPTV) 등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이뤄냈다. 동시에 산업계에선 기존 업종과 ICT의 컨버전스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2010년 초 KT의 자칭 '아이폰 혁명'도 일어났다. 이 모두 작금의 ICT 융합 운운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란 뜻이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ICT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는 기대 이하다. 1992~2005년 동안 ICT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비IT산업의 약 네 배인 15.9%다. 그러나 IT제조업 취업자 수는 1994~2005년 연평균 3.1% 느는 데 그쳤다. IT서비스업은 11.2% 늘었지만 2000년 이후 고용 증가는 IT제조업 6만여명보다 낮은 2만여명에 그치고 있다. ICT 덕에 노동생산성이 높아졌지만 이는 고용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술의 진보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고 자동화ㆍ정보화가 인력을 절감시켜온 건 굳이 '노동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을 들먹이지 않아도 흔히 보고 겪는 현상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ICT 융합 서비스가 새로운 산업을 낳아 과거에 없던 일자리를 만든다는 주장이다. 아이폰의 앱스토어가 29만여개의 앱 개발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한편에선 대부분 앱 개발자들이 쥐꼬리만한 수입만을 얻을 뿐이라고 반박한다. 좋은 일자리하곤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문답을 하고 더 나은 방법과 대안을 찾는 게 정치다. 그런 국회였다면 김씨가 무책임하게 퇴진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국민들은 보지 않아도 됐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