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테헤란밸리엔 아직도 한파

"신문 보기가 겁납니다. 다들 경기가 좋아졌다는 말들을 하는데 우리는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K사장의 하소연이다. 대외 경제의 불안요인에도 불구하고 국내 산업은 이제 완연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대세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산업만은 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테헤란밸리에 불고 있는 구조조정 열풍은 국내 벤처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올해부터 경기가 본격적인 상승국면을 맞으리라는 전망을 토대로 올초부터 사업확대 전략을 펼쳤으나 결과는 보기좋게 실패로 돌아갔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최근 구조조정에 들어간 벤처들이 '잘 나가는' 기업들이라는 사실이다. 보안업체인 M사, H사, 커뮤니티 회사인 F사 등 업종 선두권 회사들이 절반 가까운 인력을 회사에서 내보내고 있다. IT 업계에서는 '대마불사'의 원칙조차 실종돼 버렸다. 구조조정은 회사의 군살을 빼고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의미에서 무조건 나쁘다고만은 할수 없다. 그러나 잘나가던 기업이 회사자체 문제보다는 외부요인으로 인해서 어쩔수 없이 구조조정을 하는 바람에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벤처의 요람으로 불리우는 테헤란밸리를 떠나는 벤처들도 다시 늘어나고 있다. 휴대폰 특수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텔슨전자와 세원텔레콤마저 비용절감 차원에서 테헤란밸리를 등질 계획이다. 아예 기업을 통째로 팔려는 움직임도 많아졌다. 코스닥이 자금조달의 창구 기능을 상실하면서 돈 있는 사람에게 경영권을 넘기려는 알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M&A 업계 관계자는 "사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더 많은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때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허파'로 불리우던 테헤란밸리는 지금 흉흉한 적막이 감도는 무덤처럼 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연일 내놓고 있는 벤처정책에는 '육성'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고 오직 '규제'만이 있을 뿐이다. 이미 상당수 벤처들이 정부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지 오래다. 기술 하나 믿고 테헤란밸리로 몰려들었던 젊은이들이 경기침체와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규제에 포위돼 방향타를 상실하고 있다./ 김한진<정보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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