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디지털 과소비] 4. 무분별한 정책

대표적인 사례가 이동전화 사업자들이 무분별하게 가입자를 끌어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시작한 단말기 보조금 지급 문제다. 정보통신부는 올해초 업체들의 단말기 보조금 지급이 통신 과소비를 조장하고 사업자의 경영악화를 불러오는 요인이라며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다.그러나 업체들은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면 가입비가 크게 오르는 만큼 서둘러 가입하라고 유도, 가입자가 폭증하면서 4~5월에는 단말기 품귀현상까지 일어났다. 업체들은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가입자 유치경쟁을 계속했다.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한다며 정통부 정책에 강력하게 반발, 「편법」으로 화답한 셈이다. 결국 정부는 사업자들에게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않는 정책은 언제든지 거부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웬만한 정책은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가도 된다는「면역」만 길러준 셈이다. 일관된 정책을 보여주려던 정부가 사업자들에게 오히려 「뒷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돼버렸다. 씨티폰(CT-2) 정책은 또다른 정책실패 사례다. 수요 예측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섣불리 사업허가를 남발한 결과로 판명됐다. 사업성을 도외시하고 무더기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바람에 한국통신과 지역사업자들이 6,000억원의 투자손실을 입었다. 시티폰 상용서비스 개시후 불과 6개월 뒤에 우수한 성능의 PCS(개인휴대통신) 서비스 계획을 세워놓고도 신중치 못한 정책결정을 밀고 나간 탓이다. 20일부터 제품이 본격 출시된 인터넷 PC도 정책혼란으로 국민들만 골탕먹은 케이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보화 시대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는 더없이 좋다. 그러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정부는 일부 대기업의 이해관계 때문에 가격을 올렸다가 비난이 거세게 일자 다시 값을 내리는 등 망신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지나치게 가격에만 집착한 나머지 컴퓨터가 이용자의 욕구에 따라 언제든지 업그레이드돼야 하는 기기라는 점을 간과했다. 인터넷 PC 사양을 꼼꼼하게 따져본 소비자 김정열씨는 『1년후 상황도 내다보지 못한 「장난감 PC」』라고 혹평했다. 값을 맞추기 위해 마더보드 칩을 「I810」으로 맞추고 사운드 카드 등을 일체화 하는 바람에 그랙픽이나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맛보기 PC」로 전락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이용자들이 1~2년안에 새 PC를 구입할 수 밖에 없는 등 또다른 과소비를 불러일으킬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과소비를 막아야 하는 기술개발에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휴대폰 배터리 팩과 충전기 표준화. 같은 회사인 S사가 A모델(5,000대 생산)과 B모델(3만5,000대 생산), C모델(13만9,000대)을 연이어 생산했지만 배터리 호환이 전혀 안된다. 같은 단말기끼리만 배터리를 바꿔 낄 수 있다는 얘기다. L사가 개발한 D, E모델은 겨우 4만8,000대만 배터리를 바꿔 낄 수 있다. 지난 96년부터 생산한 단말기는 모두 179종에 2,400만대. 이 가운네 모델이 다른 기종끼리 배터리를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단말기는 고작 300만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배터리 팩과 충전기를 만드는데 쏟아부은 돈만도 1조1,000억원에 달한다. 휴대폰 신모델이 나오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정부가 진작 나서서 기술 표준화를 유도했어야 할 일이다. 차세대 영상휴대폰 IMT_2000 사업과 관련, 사업자 선정방식과 관련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사업자 선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PCS 선정때 처럼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해 주파수 경매제를 도입할 뜻을 강하게 비췄지만, 사업자들은 일제히 반대하고 있다. 단순 공매방식으로 흐를 경우 자칫 선정된 사업자의 적자만 키우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통신과 한국전력이 깔아놓은 5만여KM의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많다.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비난이 거세지자 두 기관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를 매각하겠다고만 발표했을 뿐, 기존 인프라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뾰죽한 방안은 따로 없는 상태다. 통신정책은 엄청난 투자가 뒤따를 뿐아니라 파급 효과도 크다. 정보화 확산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지만 정책이 흔들리거나 예측을 잘못하면 과소비와 중복투자로 흐르기 쉽다. 그 손해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정부와 사업자들은 되새겨야 한다. 류찬희기자CHANI@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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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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