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4월 26일] 상생이 힘든 진짜 이유

“대기업이 중소업계의 납품단가 인상요구에 고자세로 일관하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인천 남동공단에서 만난 한 중소업체 A사장이 던진 말이다. A사장은 “납품단가 연동제 같은 제도 도입도 좋지만 납품단가 문제의 근본 요인인 대기업 내부의 납품단가 정책이 우선적으로 바뀌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토로했다. 대다수 대기업이 납품단가 문제가 발생하면 협상테이블에서만 상생을 얘기할 뿐 실제 생산현장에서는 가격인상이 반영되지 않고 있어 대기업의 태도는 논란이 이는 불리한 상황만 피해가려는 일시적 대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A사장이 꼬집은 대기업 내부의 납품단가 정책은 무엇일까. 사업하는 입장에서 자재를 싸게 구입하려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단지 이 과정에서 갑과 을의 입장이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관계설정의 논리가 작용해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최근 만난 전직 중소기업청 고위관료에게서 A사장이 지적했던 대기업의 납품단가 정책의 실상을 듣고는 그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돼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전직 고위관료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인 B전자의 경우 조달 분야 직원이 하청업체로 하여금 납품단가 인하를 받아들이도록 성과를 올릴 때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고 한다. 또 다른 글로벌 기업인 C자동차 역시 매출 3% 성장보다 납품단가 1% 인하를 달성하는 것이 회사의 수익에 더 큰 도움이라는 원칙을 갖고 고수하고 있어 연말이 되면 조달 분야 직원들은 어떻게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할지 계획을 세우느라 바쁘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대기업들이 세계시장으로 나가서 많은 수출계약을 따내며 국가 경제에 공헌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 때문에 납품단가 문제의 책임을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전가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공적을 쌓아도 이처럼 터무니없는 경영시스템을 버리지 않는 한 자신들의 희생으로 일궈낸 공적을 대기업이 가로챘다는 중소업체의 피해의식만 커질 뿐 진정한 상생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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