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다시 보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2> 그들만의 리그, 이상한 이사회

밀실회의·술잔 소동·위기땐 침묵… 이사회 구성방식 확 바꿔야

KB이사회, 하나·신한과 달리 자기들끼리 선출

'패거리 권력' 막으려면 권한·책임 명확화 필요

이경재 KB금융지주 이사회 의장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임영록 회장의 대표이사 회장 해임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이사회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오고 있다. KB 사태를 계기로 이사회 기능을 수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연합뉴스


"제도적으로는 잘 갖춰져 있습니다. 단 사외이사나 이사회의 책임 부분이 아직 정착이 안 된 상황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사회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23일 공식 석상에서 던진 말이다. 풀어보면 KB금융 사태는 이사회 제도의 미흡함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제도 운영의 문제라는 지적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그랬다. 상법상 주식회사의 이사회는 어느 조직보다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 금융회사 이사회의 상당수는 밀실에서 '그들만의 리그'식으로 이뤄지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굴곡진 상황들은 각종 파행으로 이어졌다.

돌이켜보면 한때 리딩뱅크의 칭호를 받았던 KB금융그룹이 역주행을 하게 될 때면 그 뒤에는 늘 이사회가 있었다.

지난 2012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졌던 '어윤대 KB 회장 술자리 소동'은 그 결정체였다. 그룹의 회장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사외이사에게 고성을 지르고 술잔을 내던진 것이다.

겉모양은 ING생명 인수를 둘러싼 의견 대립이었지만 속내는 지주 회장과 사외이사 간 자존심 싸움이었다. 사람의 문제이자 운영의 문제였던 것이다.

KB금융 핵심관계자는 "어 전 회장에게 패착이 있었다면 이사회를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라며 "그 결과 경영진 견제의 의무를 갖고 있는 이사회가 오히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돼 정상적 경영을 가로막았다"고 말했다.

◇이사회의 제 식구 감싸기=KB금융 사태를 이해하기 위한 프리즘으로 동원되는 것이 신한 사태다. 결론부터 말하면 신한 사태는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의 경계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였다.


시계를 4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신한 사태는 2010년 9월2일, 신한은행이 신상훈 사장을 횡령·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약 열흘 후 신한금융 이사회는 신 사장에 대해 직무정지 결론을 내렸다. 이후 갈등 당사자들을 배제시킨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비상경영 체제가 가동됐다. 바로 그날 라응찬 회장이 자진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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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을 이사회가 주도했다. 이사회는 환부를 없애기 위해 경영관리자의 선임·해임이라는 자신들의 권한을 십분 이행했다.

반면 KB금융 이사회는 사태가 막장으로 치달을 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5월 KB금융 사태가 표면화된 지 넉 달 만에 이사회는 "다수의 이사는 조직 안정을 위해 임 회장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주력 계열사인 국민은행 은행장이 사임하고 지주사 회장의 직무가 정지된 초유의 경영공백 상태에서 고작 '회장이 알아서 하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금융 당국 고위관계자는 "이사회가 친회장파로 구성돼 있다 보니 조직(KB금융)보다는 개인(임영록 회장)을 안배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회장과 행장이 KB금융 사태의 주연이라면 이사회는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 이사회=다른 행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동전의 양면이라 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이행하는 과정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신한금융 이사회는 신속한 대처로 사태 발발 3개월 만에 당사자 3명을 모두 자리에서 내보냈다. 마지막으로 이백순 행장이 물러나자 이사회는 바로 다음날 서진원 행장을 선임했다. 이후 2011년 2월 이사회는 한동우씨를 새 회장으로 내정했다.

신한 사태 해결 과정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여기서부터였다. 신한지주 이사회는 윤계섭 특위 위원장과 전략적제휴자인 필립 아기니에 BNP파리바 본부장을 제외하고 전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전성빈 당시 이사회 의장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사회 멤버 어느 누구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이사회의 책임 있는 행보는 신한금융의 조기 정상화의 밀알이 됐다.

반면 KB금융 이사회는 무책임의 극단을 보여줬다. 사태가 악화 일로를 걷는 동안 책임 있는 발언이나 수습책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수수방관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았다. 급기야 밤새 임 회장을 찾아다니며 자진사퇴를 권하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했다. 주어진 권한은 주머니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기만 했던 것이다.

◇이사회 구성 방식부터 확 바꿔야=이사회 제도가 그들만의 리그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대표적 증거는 선출 방식이다.

하나금융과 신한금융은 회장과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 반면 KB금융은 사외이사를 자기들끼리 모여 선임한다. 사추위에 회장이 배제된 것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위한 것이라지만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 집단의 자기권력화가 이뤄진다. 특히 이사회 운영이 밀실에서 이뤄지다 보니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1년씩 연임해 최대 5년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다.

KB금융 사외이사 현황을 보면 9명 중 8명이 서울대 상대 출신인데 사외이사진이 이 같은 패거리문화식으로 운영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선출 방식의 허점 때문이다. 순수 금융인 출신보다 교수 출신이 유독 많은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에 반해 전체 10명의 신한금융 사외이사 중에는 교수, 변호사, 금융인, 기업인, 관료, 제휴기관 임원 등이 고루 섞여 있다.

KB금융 사태는 이사회 제도를 수술대 위에 다시 한번 올려놓았다. 사외이사의 자격 및 이사회 구성조건 등 세부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권위를 잃은 이사회가 권한만 휘둘러대는 모순이 드러난 만큼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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