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진짜 '의리'와 가짜 '의리'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관피아 적폐… 원칙 무너진 사회에 불신 최고조

지연·학연 얽힌 '가짜 의리' 대신 믿음 화합에 대한 열망 채워줄

국민에 대한 진짜 의리 기대한다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장안에 화제가 되는 배우 김보성의 '으리(의리)' 이야기다.

김보성은 1분40초짜리 식혜 음료브랜드 CF에서 느닷없이 쌀가마니를 후려치며 "우리 몸에 대한 으리!" "전통의 맛이 담긴 항아으리(항아리)!" "신토부으리(신토불이)!"라고 소리친다. 막바지에는 "이로써 나는 팔도(광고주)와의 의리를 지켰다. 광고주는 갑, 나는 으리니까(을이니까)!"라고 비장하게 외친다.


온라인상에서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다. 지난달 7일 유튜브에 등록된 광고 영상은 현재 조회수가 300만건에 육박한다. 온라인에는 패러디 영상과 담론이 봇물을 이루고 6·4 지방선거에 출마한 한 서울시장 후보는 선거 포스터에 김보성 캐리커처와 함께 '약속을 지키으리'라고 쓰기도 했다.

과장된 허풍처럼 보이는 김보성의 '으리' 타령에 사람들이 폭소하면서 박수를 치는 이유는 뭘까. 의리에 대한 목마름 때문은 아닐까. 고리타분하다고 외면하던 의리에 열광하는 것은 믿음과 화합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큰 탓일 게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원칙이 무너진 우리 현실을 국민들이 목격하면서 의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진단한다. 사회 불신이 극에 달해 잊혔던 의리가 재조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감되는 분석이다.


세월호 참사는 수십년간 쌓여온 우리 사회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우선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을 버렸다. 고객들에 대한 약속과 신뢰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쳤다. 청해진해운은 불법과 편법을 통해 승객·국민들을 속여 왔고 정부는 허둥지둥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모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무시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무엇보다 '관피아'로 대표되는 끼리끼리 문화의 적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선배·후배의 끈끈한 정으로 뭉쳐 밀어주고 끌어주며 인생 2모작, 인생 3모작을 즐긴 '그들만의 의리'의 실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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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가짜 의리가 진짜 의리인 것처럼 대접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그 폐해에 대해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참된 의리의 의미는 왜곡되고 뒤틀려졌다. 실력이나 능력보다는 지연·학연 등에 기대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고 그걸 토대로 일을 도모하는 전근대적인 사고의 의리를 추켜세웠던 것이다. 그 결과 조직폭력배의 의리 수준으로 의리의 값어치가 떨어져 버렸다.

국어사전을 보면 의리(義理)는 사람 혹은 사람 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다. 곤경에 처한 이웃을 스스럼없이 돕는 마음이나 어려움에 있는 친구를 돕는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 신의(信義)·도리라고도 한다. 김보성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했던 이 말과 일맥상통한다. "사적인 야망이 아닌 공익을 위한 야망을 갖고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의리 문화는 얼마든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례가 국민의 질타를 받고 있는 관피아다. 관피아와 같이 가짜 의리로 뭉친 집단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자기 '식구'의 이익과 패거리 의식이 있을 따름이다. 국민 위에 군림한 채 법과 제도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이용하고 권력자 비위만 맞추면 그뿐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계속되면 이른바 '짜가'가 판치는 세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지 않겠는가. 아직 우리 사회에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아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김보성의 '으리' 이야기에 국민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진짜 '으리'가 으리으리하게 평가받는 세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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