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소득파악 여부가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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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재정통합을 1년6개월 유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재정통합 여부를 둘러싸고 시민ㆍ사회단체 간에 벌어졌던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한국노총은 연기가 아니라 완전 백지화를, 민주노총ㆍ경실련 등 일부 노동- 시민단체는 "정치권의 이번 결정은 여야 합의로 4년 가까이 통합을 추진해 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며 반발, 또 다른 불씨를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건정책의 최고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김원길 보건복지부 장관은 담배부담금 관련법안의 국회통과에만 힘을 쏟았지 건강보험 재정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통합이든 분리든 국회에서 빨리 결정하라"식의 태도를 보여 이번 재정통합 유예는 '무책임 정략'에 '무소신 대응'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재정통합 유예를 둘러싸고 노동ㆍ사회단체간 일고 있는 논쟁을 조명해 본다.
◇"보험재정 파탄원인 알아야"
한국노총 등 재정통합 유예 결정에 찬성하는 시민ㆍ사회 단체들은 재정통합은 보험료의 형평부과 방안 등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이고 있다.
더 나아가 일부에서는 정부가 내년 7월까지도 자영업자들의 소득파악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을 경우 '법안폐기'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들은 일반조세의 경우 ▦소득 ▦재산 ▦소비와 국민의 경제활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부과하고, 지출역시 국방ㆍ치안ㆍ공중보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근로자나 자영업자 구분 없이 단일재정으로 운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 이에 비해 건강보험 재정은 일반 조세와는 달리 단일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질병으로 인한 보험료의 지출규모나 개인부담 등을 정확히 산출할 수 있어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건강보험 재정파탄의 원인은 무엇보다 사회보험의 본질을 외면하고 조직을 통합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종대(경산대 복지문제연구소장) 교수는 "96년 897억원의 적자가 발생한 것을 시작으로 지역의보가 통합된 98년에는 적자규모가 6,400억원으로 급증했으며 의보통합 3년 만에 4조원에 이르던 적립금도 모조리 소모했다"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2001년 건강보험의 당기적자는 2조7,498억원. 지난해 5월 건보재정 종합대책 발표 당시 예상한 1조1,252억원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직장보험 적자 불 보듯
경실련ㆍ민주노총 등은 재정통합은 오히려 보험재정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은 관리조직 뿐만 아니라 재정통합과 보험료 부과체계의 통합이라는 수순을 밟아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정분리 체계를 그대로 둘 경우 올 직장보험은 약 3조원의 적자가 예상돼 37.5%의 보험료 상승요인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전체 건강보험 가입자의 평균 18%(850만명)가 1년 동안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로 순환이동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재정을 분리하면 직장인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주장을 뒤집어 보면 재정분리가 농민이나 자영업자들에게 손해라는 논리인데 이 역시 단견에 불과하다는 것.
김연명(중앙대ㆍ사회복지학)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적자의 직접적인 요인은 수가를 단기간에 50% 가까이 인상했기 때문"이라면서 "재정을 분리한다고 수 조원에 달하는 적자가 흑자로 돌아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재정안정을 위해 시급히 마련해야 할 과제는 만성적자 해소를 위한 보건의료체계의 개편"이라면서 "이럴 경우 자영업자나 직장인들의 형평성 있는 보험료 부과는 가능하고 특정집단의 과도한 불이익도 막을 수 있을 것"고 덧붙였다.
◇자영업자 소득파악 여부가 열쇠
재정통합 여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쟁은 "낸 만큼 받아야 한다"는 보장의 형평성과 "사회적 강자가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소득 재분배 논리가 상충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건문제 전문가들은 재정통합을 둘러싸고 일고 있는 논쟁을 잠재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철저히 파악, 형평성 있는 보험료를 부과하는 길 뿐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매월 수백~수천만원의 수익을 내는 자영업자의 소득이 제대로 신고되지 않는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1년6개월 뒤에도 찬반논쟁을 결코 잠재울 수 없다는 것.
통합을 할 경우 고소득자에서 저소득자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소득이 투명한 사람으로부터 소득이 감춰진 사람에게 분배가 이뤄지는 기형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1만 명이 넘는 건강보험공단의 경직된 조직체계 개편도 큰 과제다. 국민을 '고객'으로 여기지 않고 툭하면 파업이나 일삼는 '공룡조직'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싸늘하게 변한 것은 이미 오래된 과거사다.
박상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