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軍과 대학의 철밥통


30년 전 군생활을 할 때 직접 목격했던 일이다. 기자가 근무하던 부대의 수송특기 간부 중 한 명은 운전을 할 줄 몰랐다. 나이가 서른을 넘은 그는 수송대대의 골칫거리였는데 써먹을 곳이 없는 그는 하루 종일 빈둥거리다 일과가 끝나면 퇴근하고는 했다. 유조 트럭을 운전하던 또 다른 간부는 이따금 보급담당 사병을 찾아가 군의 기름을 외부로 빼돌리자고 추근댔다. 그는 어느 날 밤 민간인을 부대 내로 불러들여 기름을 팔아 먹다 사병에게 들키기도 했다. 사병의 식사를 책임지는 급양중대에서도 비슷한 부정이 있었다. 매주 토요일 아침식사 메뉴는 언제나 라면이었고 그에 곁들여 달걀이 하나씩 나왔다. 부정 사라졌어도 편법은 기승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병사 한 명당 한 알씩 나오던 달걀은 사라지고 라면국물에 달걀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필요한 달걀의 수는 30%로 줄었고 나머지는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렸다. 아마도 그런 일련의 사건들은 그저 30년 전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일 것이다. 실제로 그 같은 군의 비리는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부정과 비리는 사라졌을지 몰라도 나사 풀린 군의 기강은 여전한 듯싶다. 뇌수막염으로 병사들이 앓아 누울 때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군당국이 사람이 죽어 나가고서야 부랴부랴 접종을 하겠다고 수선을 피우고 군법을 집행하는 헌병단장이 공금을 횡령하는 걸 보면 군 지휘관들의 안일함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남학생들이 입대 전이나 입대 후에 공부하는 대학들도 나을 것은 없다. 대학들이 요즘 반값 등록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지만 기실 반값 등록금보다 심각한 것은 대학 구성원들의 도덕적 해이다. 최근 서울 시내 사립대의 전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K씨는 기가 막힌 경험을 했다. 보직을 맡은 교수가 가르치는 과목을 수강했는데 그 교수는 한 학기 동안 단 한 번만 강의에 들어왔다. 그는 나머지 시간은 모두 휴강하고 시험도 리포트로 대체했다. 원생들은 모두 분통을 터뜨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농땡이를 친 그 교수는 재단 이사장과 직접 통하는 실세였기 때문이다. 대학생 A씨도 비슷한 불만을 토로했다. A씨 학과의 한 교수는 10년째 똑같은 시험문제를 제출하고 있어 선배들로부터 물려 받은 모범답안만 있으면 학점 받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이 교수가 다른 과목을 개설해 수강신청을 했더니 강의내용은 전 학기에 배웠던 과목과 한 자도 틀리지 않아 기가 막혔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이쯤 되면 교수들의 강의를 평가하네, 어쩌네 해도 공부하는 교수 따로 있고 노는 교수 따로 있다는 얘기다. 기자는 고개가 숙여질 만큼 학구적인 교수와 사명감에 불타는 군인들도 많이 보아왔다. 그렇기때문에 모든 군부대와 대학의 근무기강이 이처럼 이완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한 건 기자가 취재하면서 보아온 민간 기업들의 노동강도와 긴장감은 군과 대학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팽팽하다는 것이다. 조직 내부 경쟁방안 확충해야 기자는 대학과 군대의 기강이 느슨한 것은 민간기업들에 비해 조직 내 경쟁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따라서 군의 경계태세 강화와, 반값 등록금을 실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이 아니라 조직 내에서 뒤처지면 도태된다는 긴장과 위기감이다. 우리의 아들들이 황금 같은 대학 4년, 군대 2년을 이런 느슨한 조직에서 보낸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들이 6년 동안 대충하는 요령과 편법을 배워 사회로 나간다면 이 나라의 앞날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나는 내 아들이 6년간 힘들고 피곤해도 제대로 된 조직 속에서 공정한 경쟁의 룰과 헌신의 자세를 배워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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