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몰락 예고·북 핵심부 큰충격/해동기미 남북관계 당분간 교착 예상북한의 이념적 근간인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정립, 발전시킨 황장엽 노동당국제담당비서의 망명은 북한권력 중심체제의 심각한 균열을 대변해준 사건이다. 특히 북한의 최대명절격인 김정일의 생일(2월16일)을 앞두고 일어난 이번 사건은 우선 북한에서의 주체사상에 대한 자기부인이자 주체사상의 몰락을 예고하는 것으로 북한핵심부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 충격만큼 지난해 잠수함사건 이후 동결되었다가 올들어 다시 해동의 기미를 보이던 남북관계도 당분간 또다시 교착이 예상된다.
조선사회과학자협회중앙위원장으로 주체사상과 관련된 각종 국제세미나 등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방문이나 외국인사들과 접촉이 잦은 황장엽은 시대가 변해 주체사상도 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를 간간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실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주체사상에서 마음이 돌아선지 오래됐다는 반증이다.
그는 지난 4일 일본 동경에서 국제문제연구회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냉전에서 소련이 졌다』고 시인하고 『사회주의가 인기를 잃었다』는 말도 했다. 노동당의 대표적 이론가로서 냉전시대 종식이라는 국제정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마땅한 논리를 찾지 못한데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친 것이다.
황장엽은 김정일이 백두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는 이른바 백두산 출생설을 이론화했다. 지난 84년 김일성이 비공식적으로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단독수행했을 정도로 북한 최고위층의 신임도 두터웠다.
황비서의 망명은 또 그가 주체사상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김일성·김정일 후계체제를 정당화한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김정일체제에 대한 불만 내지 불신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황은 북한경제가 깊은 나락으로 빠져든데다 극심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놓고 김정일의 노선과 다른 발언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황은 남한에 망명한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라는 점에서 최근의 탈북사태와 함께 김정일체제에 심각한 변화가 머지 않아 일어날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
황의 망명은 대북 식량지원과 4자회담 문제 등을 놓고 경색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부도 황비서의 망명으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될 것을 우려하면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임웅재>
◎황장엽은 누구/주체사상 집대성한 김정일의 스승
12일 망명한 황장엽(74)은 북한의 김일성주체사상을 집대성한 장본인이자 김정일의 스승으로 노동당 서열 24위의 실력자다.
황은 우리나라의 국회의장격인 최고인민회의의장을 10년 동안 역임한 인물로 현재는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과 노동당 국제문제담당비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한때 당서열 13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으며 김일성의 조카사위로도 알려지고 있는 그는 지금까지의 북한귀순자 중 최고위급 인사다.
김일성주체사상의 최고이론가이며 김정일에게 주체사상 및 「제왕학」을 가르친 황은 김정일의 후계자 이미지관리에도 깊숙이 간여했다.
황은 지난달 30일 쌀지원 및 일·북한 수교협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 지난 5일 현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체제가 오는 9, 10월 공식출범할 것이라고 북한고위관리로서는 최초로 밝힌 바 있다.
▲23.2 함북 길주산 ▲52. 모스크바종합대학 철학부졸 ▲54.10 김일성종합대학 철학강좌장 ▲59.12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65.4 김일성종합대학총장 ▲72.12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 ▲80.10 당 사상담당비서 ▲84.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현) ▲85.4 당 국제담당비서(현)
◎김덕홍은 누구/대러 벌목공 송출 「여광무역」 총사장
김덕홍(59)의 현직은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 조선 여광무역연합총회사총사장, 국제평화주체 재단 총재, 재정관 겸 평양사무소소장 등으로 돼있다.
김이 총사장으로 있는 여광무역연합총회사는 벌목공 등 북한의 대러시아 인력송출을 담당하는 기구. 그의 망명으로 북한의 해외인력 송출 및 운용 실태를 소상히 파악할 수 있게된 셈이다.
김은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한 엘리트로 조선경비대중사로 제대후 김일성대학 교무부 지도위원을 지내고 노동당 중앙위 지도원과 부과장 및 부실장도 역임했다.
지난 95년 4월부터 북경에서 체류해 왔으며 가족으로는 부인과 1남3녀가 있다고 우리 당국은 밝혔다.<임웅재>
◎왜 망명했나/식량지원 등 방일성과 없어
북한 최고실력자 김정일의 스승이자 주체사상 최고이론가인 황장엽이 왜 갑자기 서울로의 망명길을 택했을까.
이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황의 최근 방일행적을 추적해 보면 적잖은 단서를 잡을 수 있다. 황은 지난달 30일 주체사상연구회가 「21세기와 인간의 지혜」라는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동경을 방문, 11일까지 머문뒤 북경을 거쳐 평양에 돌아갈 예정이었다. 황은 겉으로는 주체사상 세미나 참석을 방일 목적으로 내세웠지만 실제론 지난 92년 11월 이후 중단된 일본과의 수교협상 재개를 위한 정지작업과 식량지원 요청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황은 체일기간 중 야마사키 다쿠(산기척) 자민당 정조회장, 노나카 히로무(야중광무) 간사장대리,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 총리, 도이 다카코 사민당위원장 등 일본 정계의 전현직 고위인사들과의 접촉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은 또 5일 일본 요미우리신문 등과의 회견을 통해 김정일체제가 올 가을 정식으로 출범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불과 며칠전까지 북한의 체제수호를 위해 몸부림치던 황이 돌연 평양을 영원히 등지는 길을 택한 것은 일단 방일성과가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쳤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지난 5일로 예정된 4자회담 참가를 다시 연기하는 바람에 황은 일본 정계의 고위인사를 만나는데 대부분 실패하는 등 철저히 배척당했다. 황은 귀국 전날인 10일 이토 시게루 일본사민당간사장을 만났을 뿐이다.
하지만 한때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의장과 노동당 사상담당 비서를 역임했고 김정일의 가정교사까지 맡았던 거물급 원로가 방일성과 부진만을 이유로 망명을 선택했다고 단정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