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최윤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

日서도 韓서도 차별받는 교포3세 '경계인의 恨'이 악바리 정신 밑거름 됐죠





온갖 불이익에도 한국 국적 지키며 日서 부동산·음식점… 스스로 개척
만만하게 보는 시선 뚫고 성공길에
'진짜 한국인' 영어 첫 글자 OK로 저축은행 이름 지으며 설움 날려

대부업으로 소비자금융 공략할때도'일본계'라는 딱지에 각종 루머 무성
고객·직원·법만 바라보고 난관 헤쳐
기회되면 카드·보험 서비스도 진출…'제대로 된 금융서비스그룹' 꿈 열 것



새까만 옛날식 교복에 맨발을 하고 서 있는 소년, 그리고 한복 차림에 쪽머리를 한 여인들. 꿈 많은 고등학교 시절의 최윤(사진)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과 그의 어머니를 찍은 흑백사진이 인터뷰 자리에 등장했다. 최 회장은 사진을 짚으며 "운동회인데 내가 학생회장이어서 응원전을 열심히 한다고 맨발로 사진을 찍었다"며 "이건(어머니 사진) 1970년대 사진인 것 같은데 무슨 결혼식이나 가족 행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땐 일본에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게 쉽지 않았는데…"라며 회상에 젖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서도 한국 국적을 지키고 살아온 그의 인생이 두 장의 흑백사진에 녹아 있었다.

알려진 대로 최 회장은 재일교포 3세다. 한국에서는 '일본계'라고 최 회장을 부르지만 일본에서도 그는 이방인이었다. '경계인'의 삶이었다고 할까.

최 회장은 "국적이 외국인이어서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취직도 못했다. 재일교포들이 농담처럼 했던 말이 '재일교포가 일본에서 가질 수 있는 직업은 다섯 가지뿐'이라는 거였다. 스포츠선수·연예인·사업가·야쿠자·교수 이렇게 다섯 개. 그래서 지금 연예계나 사업가 중 손정의처럼 잘된 재일교포가 많다. 아마 한국 진출할 때 내가 야쿠자라는 루머가 돌았던 것도 재일 교포의 이런 현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 국적을 계속해서 지킨 이유가 뭘까.

그는 '한(恨)' 때문이라고 답했다.

"전 세계에 한민족 800만명이 있다고들 하는데 오직 일본교포 일부가 지금도 한국 국적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과거 일본에 침략당했던 시절 일본 땅에 건너가 살게 됐지만 침략당한 한이 남아 국적을 바꾸지 못하는 거죠."

일반 회사에 취직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었기에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 했다. 강한 사업가 기질과 악바리 정신이 이런 환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지난 1989년 나고야에 신라관이라는 이름의 음식점을 열어 돈을 벌기 전까지도 벤처 투자나 부동산업 등 갖가지 사업을 했다. 최 회장은 "일본에서 사업할 때 차별을 많이 당했다. 재일교포라고 만만하게 보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 게 약이 됐다. 쉽게 보니까 오히려 나한테 기회를 줬고 오기로라도 잘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꾸 일본계 일본계 하니까 한국인으로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고 늘 다짐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성공한 그는 한국에서 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했지만 만류가 심했다. 재일교포 1·2세대 중 애국심에 자산을 한국으로 옮기거나 투자한 대부분이 실패했고 최 회장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첫 단추는 실패였다. 정보기술(IT) 붐이 일어났던 1999년 무렵 벤처캐피털로 투자를 했다가 2001년 IT 버블이 붕괴하면서 큰 손해를 봤다.

최 회장은 "주변 사람들이 안 된다고 할 때 나는 성공할 거라고 장담했는데 막상 실패하니까 답답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실패 이유를 분석해보니 내가 직접 경영하지 않아서 그런가 싶었다"며 "한국에서 사업을 한다면 돈벌이만이 아니라 그 산업계를 이끄는 1등이 돼보자는 생각으로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찾은 것이 대부업이었다.

당시 일본과 미국에는 대부업, 소비자금융이 일반화돼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업의 개념도 명확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최 회장은 "한국에서는 현재 현대캐피탈로 바뀐 제너럴일렉트릭(GE)캐피탈이 높은 수익을 내고 있었다"며 "대부업을 산업으로 인정하는 법제화도 우리나라에서 막 시작하는 단계여서 합법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막상 한국에 진출하자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일본계라는 차별이었다. 최 회장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국적도 한국이고 부모님이 한국 사람이니 혈통도 한국계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일본계라고 한다. 나는 누가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다. 그건 오해니까 나는 한국계 한국인이다 하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앞에 나서지 않는 일본식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사업 초기인 2007년과 2009년 사이 전혀 인터뷰를 안 했고 지금도 자제하고 있다"며 "되돌아보면 그래서 나쁜 소문만 무성하고 나를 정말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돈 벌어서 다 북한에 송금한다, 모 연예인의 남편이다, 야쿠자다… 하지만 나는 오직 고객과 직원과 법만 보고 여기까지 왔다"고 강조했다.

2014년 7월 수년간의 도전 끝에 저축은행을 인수해 이름을 지을 때에도 이런 설움이 반영됐다. '오리지널코리안'의 앞글자를 따 OK저축은행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최 회장은 "저축은행 론칭할 때에도 일본계라는 말이 많았지만 모델을 태권브이로 썼을 만큼 한국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래 준비한 숙원사업이었지만 대부업과 저축은행업은 규제와 영업환경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최 회장은 "대부업은 리스크에 도전하는 일이었다면 저축은행은 가급적 리스크 제로(0)퍼센트를 추구한다"며 "다만 서민금융을 하려면 일정 부분 부실을 감수하면서도 상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용도가 낮거나 담보가 부족해도 업종과 열정을 고려해서 과감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는 "당국 규제가 더 강한 부분은 예금을 받는 입장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영업이 더 잘 안되는 것 같다. 또 가교저축은행을 인수하다 보니 그간 보수적인 영업과 부실 정리작업만 해왔기 때문에 시장에서 발로 뛰는 영업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우리 회사 문화나 시장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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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인수로 또 한 가지 바뀐 것이 있다.

사명을 아프로파이낸셜그룹에서 아프로서비스그룹으로 바꾼 것이다. 최 회장은 "이단에서 정통으로 또 정통에서 이단으로 가라는 말을 직원들에게 자주 한다. 그룹명에 파이낸셜을 넣은 이유는 금융그룹이라는 정통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지만 저축은행을 인수해 완전한 제도권 금융으로 안착했으니 다시 한 번 이단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로 서비스를 넣었다. 정통이 된 순간 금융뿐 아니라 서비스 혁명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비스 혁명을 위해 그가 준비하는 것은 하루 만에 대출을 해주는 서비스다. 최 회장은 "심사부에서 도저히 무리라고 하지만 대출 가능 여부도 한 시간 안에 알려드리는 것이 목표"라며 "스피드와 간편성은 서비스의 핵심이다. 일주일 있다가 대출이 안 된다고 하면 고객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동네 슈퍼처럼 고객님이 쉽게 찾아오고 고객 분석을 통해 고객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추천하는 서비스, 나아가 금융을 배달하는 서비스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청사진을 펼쳤다.

그의 파격은 해외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 금융사 가운데 처음으로 폴란드에 진출한 것이다. 최 회장은 "처음부터 폴란드를 목표로 한 건 아니었다. 한 나라 한 나라 검토하면서 법 제도화가 잘돼 있는 국가를 찾다 보니 폴란드까지 가게 된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로 칭기즈칸을 좋아하는데 그분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까지 진출하셨던 것도 영향을 좀 줬다"며 웃었다.

그는 "우리는 늘 법을 준용하는 금융을 추구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관련법이 막 생긴 2008년 캐피털로 진출했고 앞으로 다른 곳에 진출할 때도 이런 점을 가장 중요시할 것"이라며 "가급적 저축은행이나 카드사·보험사처럼 다양한 금융서비스 사업을 열어놓고 기회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저축은행은 그의 꿈을 일구기 위한 첫 단추이고 '제대로 된 금융 서비스그룹'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 가슴에 꿈틀거리고 있는 셈이다.

일 이야기를 할 때에는 거침없던 최 회장은 "쉬시기는 하느냐, 이러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에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쉬기는 하는데. 뭔가 늘 일이 있어서…지금까지 결혼 언제하느냐는 질문에 늘 좋은 사람 소개해달라는 말로 일관해왔는데 이제는 멘트를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조만간 좋은 소식 있을 것이다. 누가 있는 게 아니라. 나의 강력한 의지라고 봐달라"고 웃음을 지었다.

전직원에 배구 승리수당… 대규모 장학회 운영… 우리사주 300억 무상지원… 쏴 쏴



요즘 최윤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의 관심사는 배구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배구장으로 달려가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을 응원한다.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은 2013년 시즌 시작 1주일 전에 선수단이 구성될 정도로 힘든 출발을 했고 시즌 시작과 동시에 8연패를 당했다.

최 회장은 "창단 초기 어려운 시기에 배구장에서 우리 직원들이 목청 높여 구호를 외치며 응원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선수들에게도 큰 힘이 된 것 같다"며 "지금 7개 구단 1위로 연승 행진을 이어오는 것도 직원들의 뜨거운 응원 덕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직원들의 배구단에 대한 애정을 보고 승리수당을 선수뿐 아니라 전 직원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1인당 10만~20만원인데 한 번 이기면 약 2억원의 승리수당이 지급된다.

OK저축은행 고객에게도 승리수당이 있다. 스파이크 OK적금은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 배구단 관람 티켓을 가지고 지점을 방문해 가입하면 우대금리 0.6%를 제공한 4.4%에 가입할 수 있다. 배구단이 시즌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경우 0.5%포인트, 우승할 경우 0.5%포인트의 금리를 추가로 지급한다.

그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실의에 빠진 안산시민들을 위해 올해는 우승을 목표로 용병 '시몬'을 영입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며 "선수 유니폼에는 기업 로고를 모두 빼고 '위 안산(WE ANSNAN)!' 이라는 슬로건만을 달고 뛰고 있다. 많은 응원 부탁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의 쾌척은 승리수당뿐만이 아니다.

최 회장은 2015년 사재를 털어 200억원의 우리사주조합 지원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2009년에도 우리사주조합 창립 자금으로 100억원을 내놓았다. 직원들에게 총 300억원어치의 주식을 쏜 것이다. 최 회장은 "회사가 크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주인 의식이 중요하다"며 "우리사주도 직원들의 주인 의식을 높이기 위한 지원"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OK저축은행 신입 임직원들에게 선사한 선물에도 우리사주 지원과 마찬가지로 최 회장의 '뜻'이 담겨 있다. 최 회장은 "신입사원들에게 자전거와 운동화를 선물하기로 한다는 내용과 함께 황무지를 개간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리더들의 도전을 기다린다는 공모 공고를 냈다"며 "'관계형 영업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적임자를 영입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다. 최 회장은 기업 수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지도자적 인재를 육성키 위해 '러시앤캐시 배정장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아프로그룹은 매년 30억원을 장학회에 기부해 2013년 말까지 2,300여명의 학생들에게 51억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배구나 장학회 모두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다"며 "최 회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금융회사가 아니라 사회공헌을 통해 따뜻함을 지닌 '대한민국의 금융회사'라는 점을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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