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개발없이 내핍만 강조(저성장시대:중)

◎고비용구조 정면타개 노력 미흡/경상적자 축소용 대증요법 나열정부의 올해 경제정책 방향은 각 경제주체의 절약·내핍·절제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일관돼 있다. 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4∼5%대로 떨어질 지 모르는 저성장시대를 맞아 과소비·호화사치·무절제를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호소다. 이번 시책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우리 경제현실에 대한 당국의 인식이 상당한 변화를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들어 세계경제 여건이 지난해보다 더 나아지고 교역량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 높은 요소비용, 비효율적 경영행태, 낭비많은 소비생활 등 구조적 취약요인이 부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기의 「연착륙」만 내세우며 구조적 침체를 우려하는 지적에 대해 걱정말라며 고집하던 지난해와 비교할 때 당국의 상황인식은 크게 변했다. 하지만 정책대안 제시에서는 현실진단과 달리 『물가안정과 경상수지 적자 축소에 중점을 두고 성장률이 일시적으로 잠재성장력 이하로 낮아지는 것을 감수한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기조가 「안정지향 저성장수용」자세로 바뀐 것은 일단 평가할 만 하나 그같은 인식변화에 맞게 과감한 「정책발상」전환까지 이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한다. 땅값·금리·임금 등 고비용 구조의 현실을 지적하고도 이 문제를 정면으로 타개하려는 노력은 미흡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정책방향에서 세부 핵심시책으로 제시된 내용들은 대부분 경상수지 적자 축소를 겨냥한 「대증요법」의 나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에너지가격 현실화와 에너지절약시책 도입, 접대문화 개선을 통한 합리적 소비문화 정착, 미성년자의 무자격 자비해외유학 규제 등 대부분 수지적자를 타개하기위해 국민의 절약·절제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임금안정의 당부, 저축촉진 시책 등은 워낙 되풀이 강조해온 내용이어서 심각한 위기의식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진부한 느낌을 줄 소지가 있다. 이번 시책가운데 미성년자의 무자격 자비해외유학 규제는 정책 의도와 달리 상당한 혼란과 반발을 몰고올 부분이다. 경위야 어쨌든 그동안 미성년자 해외유학이 묵인돼 온 것이 사실인데 느닷없이 유학을 규제하고 생활비 송금을 중단한다는 발상은 「행정편의주의」의 대표적 사례로 지탄받을 소지가 많다. 더욱이 미성년자가 해외유학을 나서는 근본 원인이 국내 교육제도의 왜곡때문인데 돌연 해외송금만을 문제삼는다는 것은 「뿌리」를 보지않고 「가지」를 쳐내려는 처사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70년대초 일본이 저성장시대로 전환케 된 계기는 오일쇼크라는 외부적 충격때문이었다. 국제 원유가격이 치솟자 기업 가계 정부 등이 일심 단결해 에너지절약과 생산성 향상이 없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감에 몸부림쳤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침체 원인은 오일쇼크같은 외부충격이 아니라 땅값·금리·임금 등 내부요인에 의한 고비용구조 때문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다르다. 따라서 저성장시대가 불가피하다면 당국은 지가인하, 사교육비 감축 등 핵심을 곧장 겨냥하는 정책개발이 절실하다. 이같은 정부의 발상전환과 정책의지가 뒷받침돼야 근로자·가계·기업 등 각 경제주체도 희망을 갖고 흔쾌히 절제·내핍의 대열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이다.<유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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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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