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IMF 수술독에 경제 더 곪는다

◎기업들 연쇄부도·예금인출 사태까지/재경원 시장통제력 상실… “우왕좌왕”/「범정부 비상대책반」 가동시급깊은 상처를 입은 우리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응급처치를 받던 중 상처가 덧나 가사상태로 치닫고 있다. 은행, 종금사 등에선 전쟁중에서나 있을 법한 예금인출사태가 벌어지고 자금시장의 동맥인 콜자금 흐름은 완전히 끊어졌다. 영업정지를 간신히 모면한 대다수 종금사들은 콜자금을 공급받지 못해 사실상 뇌사상태다. 기업들은 금융권의 무차별적인 자금회수에 견디다 못해 규모와 관계없이 연쇄부도를 내고 있다. 금융시스템을 사수해야 할 정부당국은 시장통제력을 거의 상실한 듯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우리 경제는 흡사 IMF의 수술을 받다 수술독이 도져 사지가 썩어들어가는 긴급상황을 맞은 형국이다. 정부의 강력한 행정조치만이 사태해결의 유일한 돌파구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재정경제원은 이미 금융권의 신뢰를 잃었다. IMF 협상의 뒤치다꺼리도 힘겨워하고 있다. 기업, 재벌, 금융기관이 어떤 지경에 몰렸는지 사태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긴급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하루빨리 범정부차원의 경제비상대책반이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돼 상황을 지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예금인출사태=종금사 영업정지로 예금을 찾을 수 없고 대형 증권사가 부도를 내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지자 걷잡을 수 없이 예금인출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원금과 이자를 전액 정부가 보장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일단 영업정지가 내려진 종금사에서 당장 예금을 빼낼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예금자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 은행의 경우 하루 5천억원 이상 수신액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과민한 사람들은 부실로 소문난 은행의 자기앞수표조차 거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부실금융기관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외국계은행과 국책은행, 일부 우량하다고 알려진 은행으로 몰리고 있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 우량은행들은 예금이 늘어날수록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떨어지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IMF협상 이후의 BIS비율 하락은 곧 흡수합병, 파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기자금시장 붕괴와 종금사 부도위기=9개 종금사가 영업정지를 당한 이후 단기자금시장의 콜자금흐름이 완전히 끊어졌다. 지난 2일 이후 나흘째 나머지 종금사들의 부족자금이 급증, 5일 현재 4조원대에 육박한다. 사실상 부도를 냈는데 당국의 산소호흡기를 부착해 심폐기능만 살아 있는 꼴이다. 은행권은 영업정지된 9개 종금사에 1조4천억원대의 콜자금이 묶여 있다. 콜금리나 기업어음(CP) 금리는 법정상한선인 연25%을 기록하고 있지만 누구도 관심이 없다. 자금흐름이 멎은 상태에서 금리지표는 의미가 없다. ◇기업 연쇄부도=IMF와의 최종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5일 업계서열 8위의 고려증권이 부도를 냈고 6일 재계서열 12위(자산기준)의 한라그룹이 부도를 내 법정관리와 화의를 택했다. 영진약품도 지난 6일 부도로 쓰러졌다. 종금사들의 무차별적 자금회수와 금융시스템 붕괴는 곧바로 기업체 연쇄부도로 이어지고 있다. 자금시장에선 재계서열 10위 이내의 대그룹 중 일부도 이번 부도태풍에서 무사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해 있다. 이 서슬에 중견, 중소기업의 운명은 거론도 안되는 분위기다. ◇정부통제능력 상실=한국은행은 이미 금융시장 조정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종금사 지원을 위해 중간경로인 은행에 아무리 자금을 풀어도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한은으로부터 받아온 자금을 종금사에 주었다가 부도가 나면 책임은 은행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목숨이 경각에 다다른 은행권에 이같은 위험을 감수하라고 요구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얘기다. 재경원도 금융권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정부는 9개 종금사의 영업정지 결정 바로 전날까지도 종금사에 돈을 빌려주라고 강요했다. 환율이 폭등할 때 『외화보유액을 무한정 풀어 환율을 안정시킬 것』이라며 『지금 달러를 사는 쪽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종금사 영업정지도 마찬가지고 『은행 폐쇄는 없다』던 허풍도 곧 들통이 났다. ◇해결수단=지난 4일 종금사에 지원, 일시적 효과를 봤던 외국환평형기금을 더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있다. 그러나 한은이 관리하고 있는 외평기금은 외화콜론 15억달러와 한은예치분 19억달러에 불과하다. 이마저 재경원장관 승인을 거쳐야 사용할 수 있지만 재경원은 아직 묵묵부답이다. 외평기금 확대도 절실하나 기금확대 수단인 외평채 발행은 국무회의 의결과 국회승인이 필요하다. 통화긴축을 선언한 한은 입장에서 특융도 쉽지 않은 문제다. 이같은 상황에서 범정부차원의 비상경제대책반 가동이 절박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신뢰를 잃은 재경원에 맡겨선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원리가 아니라 비상사태에 준하는 강력한 행정력뿐이라는 주장이다.<손동영 기자>

관련기사



손동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