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이 은행권 부실이 국가경제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은행연합(Banking Union)' 출범의 핵심인 '부실은행 단일정리체제(SRM·Single Resolution Mechanism)' 설립에 합의했다.
이는 역내 은행들이 기금을 마련해 특정 은행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지원해주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유로존 재무장관들은 '은행 부실→공적자금(혈세) 투입→국가경제 위기 확대'의 악순환이 끊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강대국 독일의 입장만 반영된 껍데기뿐인 합의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아 최종 도입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체인 유로그룹은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회담을 갖고 SRM 설립에 합의했다. 역내 은행들로부터 향후 10년간 총 550억유로 규모의 기금을 모으고 단일 의사결정기구가 부실은행 문제 해결을 위한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미셸 바르니에 유럽연합(EU) 역내 시장·서비스담당 집행위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은행연합을 위한 역사적인 날"이라며 "더 이상 납세자들은 은행의 실수와 위기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막대한 구제금융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밝혔다.
유럽 금융당국은 지난 2010년부터 스페인·아일랜드 등의 은행권 위기가 국가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사태를 지켜보며 은행의 부실을 은행선에서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은행연합 출범을 추진해왔으며 구체적으로는 ▦단일 감독기구 설립 ▦단일 부실은행 청산체제 합의 ▦예금보장 체제 구축 등 3단계로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중 단일 감독기구 설립은 7월 승인됐고 이번에는 2단계인 부실은행 청산체제에 대해 합의를 봤다.
다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로 유로존이 표면적으로는 은행연합 출범에 한발짝 다가갔지만 실제로는 효용성이 없는 껍데기뿐인 합의만 봤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번 합의내용을 보면 10년간의 기금 모금 과정에서 모은 금액을 뛰어넘는 위기가 발생할 경우 해당 은행 소속 정부가 책임을 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은행 부실-국가경제 위기라는 연결고리를 끊겠다는 본래 은행연합 출범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독일 등 부유한 국가가 줄곧 주장해온 방안이다.
또 기금이 집행되려면 의사결정 의원의 3분의2 이상의 찬성과 기금 지분이 50% 이상인 출자국의 찬성까지 받아야 하는 이중절차도 명시해 급변하는 위기상황에서 SRM이 실질적으로 빠르게 활약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비토르 콘스탄시우 부총재는 "시장은 SRM 기금규모가 너무 작고 의사결정 과정이 복잡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외에 유로그룹은 향후 부실은행의 최종 폐쇄 권한도 갖게 됐다. 이는 기존에 유럽위원회(EC)의 권한을 유로그룹이 빼앗아온 것으로 상대적으로 유로그룹 내 영향력이 더 큰 독일이 원하던 사안이었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SRM 설립은 프랑스, 남유럽 등 약소국가의 의견보다는 독일 등 강대국의 의견이 대폭 반영된 것"이라며 "SRM 출범 최종 관문인 유럽의회 표결에서 약소국의 강한 반발이 일 것으로 보여 최종 출범까지 난항이 예상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