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동십자각] 등잔밑이 어둡다

만약에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 가격이 단 1원도 차이가 없고 대리점간판을 내걸지 않으면 공식적인 판매가 허용되지 않는 상품이 있다면 정부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나 여론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특히 해당기업이 소위 재판매가격유지제도를 공식적이고 공개적으로,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십년동안 변함없이 고수하고 있다면.그 정답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해당기업이 재판매가격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유지하는 과정에서 우월적지위를 남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따져보려 들 것이고, 시중의 여론도 독점기업의 병폐임을 집중적으로 비판할 게 뻔하다. 이 기업은 다름아니라 정부투자기관인 담배인삼공사다. 정부는 입만 열면 시장경제를 정착시키는 일이 시급하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정부투자기관의 행태는 가장 반(反)시장적이다. 서울시내의 담배값과 두메산골의 담배가격이 똑같고 지정된 담배소매상에서만 담배를 살 수 있게 돼 있는 제도는 시장경제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이같은 행태는 일반국민들에게 보이지 않게 반시장적인 심리를 주입시키게 마련이다. 결국 정부는 민간기업에 대해서만 시장경제를 강요할 게 아니고 자기주변을 돌아 볼 일이다. 이 상황에서 법과 규정이 어떻게 돼 있는지는 현재로선 중요치 않고 필요하면 고치면 그만이다. 또 다른 공기업의 예를 들어보자. 아침 출근시간에 승객들이 많이 내리는 주요역에는 지하철검표원들이 도열하듯 늘어서서 무임승객을 찾아내느라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역무원도 있고 소액의 하루일당을 받는 자원봉사노인들도 있다. 이들이 나와있는 이유는 뭘까. 물론 무임승차객도 적발해 내고 필요할 경우 안내도 해준다는 게 이들의 변(辯). 하지만 경제적으로 따져보면 무임승차객을 아무리 열심히 잡아내도 인건비도 건지지 못한다. 검표원 한명의 월급을 100만원(실제론 이보다 훨씬 넘지만) 이라고 하면 검표원 한명이 월급값을 하려면 지하철 기본요금이 500원이니까 매월 무려 2,000명의 무임승차객을 적발해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무리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500원을 내지 않으려고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1개역에서 월 2,000명이나 될 수가 있을까. 이는 일용직을 고용해도 마찬가지. 일용직검표원들의 급여는 주 3만8,000원수준. 이들도 한달에 최소한 300여명 가까운 무임승객을 적발해 내야 하지만 이 또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무임승객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할 수록 경영은 오히려 악화되는 셈이다. 물론 정규직원이 바쁜 시간에만 검표업무도 거든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경영개선에 별로 중요치 않은 일에 직원들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고 그만큼 경영의 효율은 떨어지는 셈이다. 공기업개혁이 한창 진행중이다. 지금까지의 공기업개혁을 보면 직원 몇명을 감축하고 자회사를 통폐합하는 등의 외관상의 개혁에 그치고 있는 모습이다. 진정한 공기업개혁은 덩치를 억지로 줄이는 차원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 경영의 효율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경영패러다임의 전환이 절실하다. 공기업도 민간기업수준의 경영마인드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기업들은 대부분 제도상으로 독과점이 보장돼 있어 민간기업수준의 경영마인드가 저절로 생겨나기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 이점에서 진정한 공기업개혁은 경쟁체제를 하루빨리 도입하는 데서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최성범 정경부 차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