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박시룡 칼럼] 에너지 安保

치솟는 유가로 3차 에너지 쇼크가 우려되는 상황에다 10년 만에 가장 더웠다는 올 여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전력생산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폭증하는 냉방용 전력수요와 함께 사상최고 수준을 갱신한 전력수요를 감당할 발전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필요할 때마다 올 여름처럼 전력을 마음 놓고 쓸 수 있을지 은근히 걱정이 된다. 송전탑 하나 건설하는 데만도 5년이 걸릴 정도로 발전시설이 기피 대상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차질 없이 공급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발전시설 놓고 님비에 님트까지 원자력발전으로 가면 거의 절망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전체 전력생산의 40% 정도를 원자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안전성 문제를 슬쩍 밀쳐놓으면 원자력발전만큼 값싸고 질 좋은 전력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 같은 에너지 빈국이 올해처럼 무더운 날씨에 전력을 펑펑 쓸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원자력발전 덕분이다. 지난 2003년 중 원자력발전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석유로 환산하면 18억배럴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금액으로 따져 연간 36억달러의 원유수입을 대체한 것이다. 유가가 치솟은 올해의 경우 원자력발전은 70억달러어치의 석유수입 대체효과를 거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만약 원자력발전이 없다면 연간 70억달러어치의 원유를 더 수입해야 현재와 같은 수준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환경오염 비용까지 합치면 사회적 비용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형편에서는 원자력만 잘 활용하면 경제의 동맥이나 다름없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럴 형편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해 부안군사태에서 겪었듯이 원자력이 혐오 대상으로 낙인 찍혀 원자력 이용의 부산물인 폐기물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78년 고리1호기 가동 이후 지난해 말 현재 가동 중인 18기의 원전을 포함해 병원ㆍ산업체에서 방사성동위원소 이용이 증가하면서 이른바 원전수거물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원전 부지 내에 임시 저장돼 있는 이 같은 원전수거물은 오는 2008년부터 단계적으로 포화상태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머지 않은 장래에 수거물을 반영구적으로 저장할 관리시설을 마련하지 못할 경우 원전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갈수록 늘어나는 전력수요도 문제지만 앞으로 닥쳐올 여름이 올 여름보다 더 덥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보면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원전에 대타협으로 석유쇼크 극복해야 원자력발전과 폐기물이 혐오시설로 님비(NIMBYㆍNot In My Back Yard)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안전을 훨씬 더 중시하는 프랑스ㆍ일본ㆍ미국 등 선진국들도 원활한 원자력발전과 안전한 수거물 관리 차원에서 수거물관리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정부의 꾸준한 노력과 주민의 이해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86년 이후 10년 동안 무려 5차례에 걸친 부지확보 노력이 무산됐고 참여정부 이후 자자체가 참여하는 자율유치 노력도 부안군사태라는 불상사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이어 올 2월 다시 신규공고를 내 9월15일까지 부지유치 신청을 받고 있다. 다행히 10개 지역에서 유치청원이 제출됐지만 정작 지자체장이 예비신청 의사를 표명한 곳은 단 한곳도 없다고 한다. 환경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나서는 지자체가 없는 것이다. 님비에 이어 ‘내 임기 중에는 안된다’는 님트(NIMTㆍNot In My Term)라는 신조어가 나올 만도 하다. 원자력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와중에서 에너지 빈국인 우리의 운명은 언제 폭등할지 모르는 변덕스러운 석유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한 정부와 주민ㆍ환경단체간의 대타협은 불가능한 것인가. /논설위원(경영博) sr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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