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기 의심 예금송금도 은행 맘대로 거래취소 못해"

"창구 오조작 등 내부오류 한해 가능"

법원, 은행 패소 판결

업무 처리 경종 울려

마카오에서 한국 관광객을 상대로 민박업 등을 하는 A씨는 지난해 5월 평소 알고 지내던 중국인 전모씨로부터 부탁 하나를 받았다.

한국에 있는 조모씨가 1,500만원을 홍콩 달러로 환전하기 위해 A씨의 우체국 계좌로 입금할 것이니 확인하는 대로 본인에게 10만 홍콩달러(한화 1,480여만원)를 전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A씨는 전씨의 부탁을 받아들였고 같은 날 오후 조씨는 실제로 본인의 은행 계좌에서 A씨의 계좌로 1,500만원을 송금했다. A씨는 이를 확인하고 자신의 남편을 통해 전씨에게 10만 홍콩 달러를 지급했다.

그러나 조씨는 돈을 보낸 후에도 전씨로부터 홍콩 달러를 받지 못하자 송금 업무를 담당한 은행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환전사기를 당했다"며 계좌이체를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은행 직원은 계좌이체로 송금을 완료한 지 30여분만에 조씨의 계좌에서 A씨의 계좌로의 타행환 송금(계좌이체)을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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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을 포함한 시중은행 사이의 타행환공동망업무에 관해 적용되는 타행환공동망업무시행세칙은 '취소거래란 당일의 타행환 시스템 가동 중에 의뢰은행 창구에서의 오조작 등에 의해 발생한 거래를 취소하는 거래를 말하며, 취소처리는 당일 발생 거래에 한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쉽게 말해 내부 규정에 따르면 계좌이체와 관련해 창구에서의 오조작 등 의뢰은행 내부오류가 발생한 경우에만 거래를 취소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A씨는 타행환공동망업무 시행세칙 등을 근거로 계좌이체 취소로 받지 못한 1,500만원을 돌려달라며 조씨의 거래은행과 은행 담당자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A씨는 1년이 넘는 기간 소송을 진행하며 1심에 이어 최근 2심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냈고, 피고인 은행이 항소심 판결을 받은 직후 대법원에 상고를 하지 않아 계좌이체 취소로 받지 못한 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송금의뢰인과 수취인 사이에 자금이체의 원인이나 법률관계가 존재하는 지 여부에 관계없이 수취인과 수취은행 사이에는 예금계약이 성립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피고 거래 은행 직원은 A씨의 사전승낙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계좌이체 거래를 취소시켰는데 이는 타행환공동망업무시행세칙에서 정하는 오류거래나 오조작 등에 해당되지 않아 취소거래를 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은행 직원과 은행, 조씨는 공동으로 1,5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A씨를 대리해 승소 판결을 이끈 이성우 법무법인 중정 변호사는 "사례도 독특하고 선례가 없는 사건"이라며 "계약 불이행 사기가 의심된다고 함부로 은행 직원이 계좌이체를 취소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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