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맡기려고 해도 맡길 곳이 없어요. 금융 상품들이 다 비슷해 특별히 끌리는 상품도 없고요. ”
10ㆍ29 부동산안정 대책 이후 부동산을 대신할 투자처를 찾고 있는 투자자들의 공통된 말이다. 실제 올들어 가장 인기를 끈 주가지수연계증권(ELS)의 경우 증권ㆍ투신사가 모두 538개의 상품을 판매했지만 상품이름만 다를 뿐 상품 내용과 구조는 거의 똑같다. 대부분 원금보존을 내세우며 판매금액의 90%를 국공채와 옵션에 투자하고 10%만 주식에 투자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올들어 모두 6조6,341억원 어치가 팔렸지만 증시활성화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개인의 주식투자자금이 국공채시장으로만 흘러 들어가는 부작용을 낳아 개인의 주식 투자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고 비판을 받고 있다.
◇매력 있는 금융상품이 없다=부동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기위해 은행ㆍ투신ㆍ증권업계가 17일부터 공동 판매에 들어가는 코리아주가지수연계펀드(KELF) 역시 효과가 의문시된다. 이 상품 역시 원금보존 구조라는 한계가 있는데다, 종합주가지수가 880포인트가 넘어야 수익이 나는 구조다.
증권 전문가들은 올해 경쟁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주식 상품들은 은행금리에 플러스 1~2%의 수익을 내도록 하는 초보적인 금융기법이 적용된 상품들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이들 상품도 외국계 투신ㆍ증권사가 이미 선점한 것을 재탕하는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황선웅 중앙대 교수는 “증권사를 비롯한 각 금융기관들이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가격결정 능력ㆍ파생상품 및 혼성상품 설계능력 등을 키워야 하는 데 이런 노력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금융상품 경쟁력 강화에 정부도 나서야=정부는 부동산안정 대책의 일환으로 증시로 자금을 유도하고 주식 신상품 개발을 가로막는 규제가 있다면 최대한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증권업계의 불만은 여전히 많다. KELF의 경우도 업계의 자율성이 제한돼 있고 일임형 랩어카운트도 부가가치세가 부과돼 증권업계의 신상품 개발 및 판매 의지를 꺾고 있다.
홍성일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KELF는 주식편입비율, 만기 등이 고정돼 있다”며 “시장상황에 맞게 증권사 자율로 주식편입비율을 정하고 다양한 만기의 상품을 만들어 상품 경쟁력을 높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봉수 키움닷컴증권 사장은 “정부가 증권사의 업무영역 확장에 너무 인색하다”며 “똑같은 주식연계상품인 은행권의 ELD는 예금보호대상으로 허용되는데 증권사 ELS 상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형평성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어 자금을 끌어들이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비과세 상품 한시적 허용 검토해볼만=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증시에 즉각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는 비과세 상품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황건호 메리츠증권 사장은 “부동자금을 증시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비과세상품의 상설화 등 보다 적극적인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며 “정부는 조세 형평성의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명하고 있지만, 미국도 경기부양을 위해 비과세 저축예금과 개인연금(IRA)의 자격요건을 낮추는 등 과감한 세제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근로자주식저축ㆍ장기증권저축과 같이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비과세 상품이 만들어질 경우 10조원의 자금이 증시에 유입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약 이런 세제개편 정책이 국회동의를 거쳐야 하는 등 당장 시행되기 어렵다면 먼저 현재 제시돼 있는 비과세 범주에서 보완을 통해 경쟁력 있는 신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수기자 hsk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