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이후 관료 낙하산은 사실상 금지됐지만 민간 회사 경영자가 상근 회장을 맡기도 어려운 만큼 비상근 회장 체제로 새로운 금융협회 지배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민간 출신을 중용하는 이 같은 구도가 정착될 경우 향후 은행연합회장 등의 인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금융계에 따르면 장기간 공석 상태인 손해보험협회 등의 협회장 자리에 회원사 사장 중 한 명이 협회장을 맡으면서 비상근 체제로 운영하는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많지 않다"며 "협회 회원사 중 한 곳에서 회장을 맡고 협회 실무는 상근 부회장이 주로 처리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협회에서 이 같은 비상근 체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신금융협회장은 지난 2003년부터 7년 동안 회원사 사장 중 한 명이 맡는 비상근 체제였지만 2010년 상근 체제로 전환됐다. 당시 재무부와 금융감독위원회 출신의 이두형 전 회장이 선출됐고 이후 기획재정부 국고국장 출신인 김근수 회장이 취임했다.
손보협회의 경우 김교식 전 차관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다가 관피아론이 불거지면서 낙하산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업계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며 이 때문에 회원사 대표가 회장을 맡는 비상근 체제가 자연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아직 비상근 체제가 적용된 적이 없지만 일본 등의 손보협회는 비상근 체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회원사 사장이 협회장을 맡는다면 현실적으로 상근 체제를 유지하기는 힘든 만큼 비상근 체제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방안에 대해 기대 반 우려 반 섞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손보업계의 한 관계자는 "관피아가 아닌 민간 출신이 맡으면 아무래도 업계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는 목소리를 낼 수는 있을 것"이라면서도 "정부나 국회와의 업무 조율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회원사들이 모두 경쟁 관계이기 때문에 특정 회원사 사장이 회장을 맡을 경우 회원사들 사이에 미묘한 갈등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금융협회 등 유관기관에 민간 출신을 중용한다는 원칙을 앞으로도 적용할 경우 금융업계 최대 이익 단체인 은행연합회장 인선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박병원 현 회장의 임기가 11월에 끝나는 가운데 차기 회장 후보로 김용환 전 수출입은행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등이 떠오르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순수 민간 출신은 조 전 행장이 유일하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모두 은행장을 거쳤기 때문에 관료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관피아 논란이 크게 불거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앞으로는 민간 출신 행장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기관장 공석이 계속되고 있는 주택금융공사와 서울보증보험 등의 사장에는 내부 출신 임용 가능성이 얘기되고 있다. 이들 기관에는 세월호 사고 전까지 모피아 출신 인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인사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 전직 금융당국자는 "금융당국이 더 이상은 관피아 논란을 만들지 말고 이참에 금융기관들의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어 시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