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김상규 조달청장

가격보다 품질이 우선…'미검사 소방복' 납품 재발 막을 것

전문검사기관 다양화하고 정부출연기관·민간기업 참여도 추진

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 수출 2017년까지 10개국 이상 확대

中企·해외바이어 연결해주는 '글로벌 장터시스템'도 연내 구축



"이제는 가격 낮추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품질조달'에 조달청의 최우선 핵심가치를 두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조달물품에 대한 검사·검수를 강화하려 하며 정부 출연기관과 민간기업이 검사업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김상규(사진) 조달청장은 최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며 가장 먼저 '품질조달'이 올해 추진할 핵심가치라고 강조했다. 그는 "조달청의 고객인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이 과거 싼 가격에 제품을 조달하기를 원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고품질의 제품과 서비스 조달을 원하고 있다"며 "이에 맞춰 주어진 예산을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집행하는 것이 조달청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김 청장은 올해 4대 조달방향을 △품질조달 △미래조달 △ 글로벌 조달 △사회적 조달 등으로 정했는데 이 중 품질조달을 가장 중요한 핵심가치로 설정했다고 강조했다. 국내 공공조달 시장은 연 115조원 규모며 이 중 조달청이 관장하는 조달규모는 36조원에 이른다.

김 청장은 최근 발생한 미검사 소방복 납품 사례에서 보듯 조달물품의 품질관리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조달청이 단가계약만 맺고 이후 검사·검수과정은 업체와 검사업체가 추진하다 보니 확인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량물품이 납품됐다는 설명이다.


김 청장은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조달청이 지정한 전문 검사기관에 검사·검수과정을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전문 검사기관 다양화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단지 계약만 맺어주는 것이 아니라 품질관리까지 관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검사·검수 과정에 대해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는 만큼 정부 출연기관과 민간기관 등이 검사업무에 참여하도록 해 미검사 소방복이 납품되는 것과 같은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가격경쟁을 지양하고 기술과 품질 강화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입찰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앞으로 불량제품이 납품되는 것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청장이 품질조달과 함께 애착을 보이는 것은 조달청 전자조달 시스템인 '나라장터'의 해외 수출이다. 나라장터는 관세청 전자통관 시스템, 특허청 특허정보 시스템과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전자정부 수출상품 중 하나다. 이달 초 카자흐스탄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도 나라장터 시스템을 수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김 청장은 현지방문에 대해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아르메니아 등 4개국을 회원국으로 하는 유라시아경제위원회(EEC)와 공공조달 제도 개선 및 전자조달 도입 지원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오는 9월께 맺기로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며 "나라장터 수출국가가 확대될 수 있는 또 하나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나라장터 시스템을 도입, 활용하는 국가는 베트남·코스타리카·몽골·튀니지·카메룬 등 5개국. 연내 요르단과 르완다에 수출할 예정이어서 연말이면 7개국이 대한민국 전자조달 시스템을 활용하게 된다. 곧 에티오피아와도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김 청장은 "코스타리카에 수출된 나라장터는 지난 2012년 미주개발기구로부터 전자정부 대상을 수상할 정도로 중남미 행정 한류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며 "2017년까지 나라장터 도입국을 10개국 이상으로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세계 30개국 이상이 우리나라의 전자조달 시스템을 운영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글로벌 조달을 올해 역점사업 중 하나로 선정한 것은 국내 중소기업들의 해외 조달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국내 조달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르며 경쟁이 치열해져 중소기업들의 판로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해외 조달시장에 진출해 성장기반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 청장의 판단이다. 조달청이 이를 지원해 판로개척을 뒷받침하겠다는 계획이다.

"우수제품 제도, 다수공급자계약 제도 등을 통해 중소기업들의 조달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해외 조달시장에 도전해야 합니다. 더구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늘어나면서 경쟁 가능한 해외 조달시장도 늘어나 우리 중소기업에는 기회의 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김 청장은 "FTA 체결국가 확대로 경쟁 가능한 해외 조달시장 규모가 6조2,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며 "조달청이 우수 조달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만큼 기업들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미 해외 조달시장 진출 유망 중소기업(G-PASS기업)에 대한 벤더 등록, 전시회 참가, 시장개척단 파견 등의 지원책을 추진하고 있고 올해는 국내 기업과 해외 바이어를 연결해주는 글로벌 장터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국내 중소기업들의 해외 조달시장 진출이 한결 용이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청장은 "지난해 우수 조달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올린 수출실적이 2억2,000만달러에 달했는데 올해는 이를 3억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올해 해외 전시회 참가지원을 3회로 확대하고 민관 합동 시장개척단 파견도 4회로 늘릴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춘 우수 중소기업뿐 아니라 신기술 등 기술력은 있지만 지원이 필요한 중소기업이 공공조달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작업도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판단이 미래조달을 4대 조달방향 중 하나로 선정한 이유다.

"지금까지 우수한 기술을 보유했으나 각종 인증이나 실적 부족으로 정부 조달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불이익을 받는 기업들이 많았습니다. 단적인 예로 시험기준이 없어 시장 출시가 힘들었던 산업융합 적합성 인증제품도 그동안 조달시장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김 청장은 이런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기술융합 신제품의 판로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우수조달제품 제도를 운영할 방침이다. 양방향 무선통신 기능 및 조명 기능을 내장한 안전모 등 산업융합 적합성 인증제품의 우수조달물품 신청자격을 확대하고 화재감시 시스템 등 정보통신 기술이 결합된 '사회안전 시스템'을 우수조달물품으로 적극 발굴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난해 취임 이후 창업 초기 기업의 자본력이 부족해 일반신용등급이 낮더라도 기술력이 뛰어난 경우 창업 초기 기업의 인정범위를 확대하고 나라장터 내 전용몰 구축 등을 통해 우수조달물품으로 지정될 수 있는 길을 대폭 넓혔다.

김 청장은 국내 건설시장 하도급 업체로 화제를 돌리자 현 상황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건설시장 하도급 업체는 늘 '을'이고 대기업 건설사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항상 하도급 업체 근로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특히 조달청이 전체 사업물량의 80% 이상을 중소기업과 계약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금지급과 관련한 하도급 근로자들의 피해는 반드시 개선돼야 할 사항이라고 힘줘 말했다.


김 청장은 "2013년 12월 하도급 계약에서 대금지불까지 하도급 전 과정을 인터넷상에서 실시간으로 관리하는 정부계약 하도급관리 시스템인 '하도급지킴이'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달 현재 684개 기관이 등록하고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321개 기관이 이용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하도급지킴이 이용률이 계약건수의 0.5%, 계약금액의 21.3%로 저조해 의원입법을 통해 이용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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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와 역사문화탐방 서비스를 상품화해 공급에 성공한 것도 조달청장 취임 이후 느끼는 보람 중 하나다. 조달업무를 다양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보여줬을 뿐 아니라 지방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조달청은 군산시와 역사문화탐방 상품을 개발해 판매에 나선 데 이어 서천군·공주시와도 조만간 '금강하구 생태학습' 여행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조달업무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 김 청장은 원스트라이크아웃제와 고발요청권을 꼽았다. 공공기관 계약에서 비리가 발생할 경우 조달청에 2년간 조달위탁을 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가 시행된 후 7개 기관에서 원스트라이크아웃제 상황이 발생했음에도 업무위탁을 한 사례는 한 건도 없고 지난해 1월 담합행위에 대한 고발요청권이 조달청에도 확대 부여됐지만 지금까지 고발 요청한 실적은 전혀 없는 상황이다. 김 청장은 기획재정부 및 공정거래위원회와 함께 이를 개선해 담합과 불공정행위를 근절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He is…

△1961년 경남 김해 △1983년 연세대 법학과 졸업 △1985년 서울대 행정학석사 △2001년 영국 버밍엄대 경영학석사 △1985년 행정고시 28회 △2004년 기획예산처 기금총괄과장 △2010년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 △2012년 새누리당 기획재정위원회 수석 전문위원 △2013년 기획재정부 재정업무관리관 △2014년~ 조달청장







"공공 정보화사업 분할 발주… '제값 주기' 정책에 올인"

소프트웨어 부문 일자리 창출 기대

각종 정보화 사업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발주기관으로부터 부당한 추가 과업을 받거나 추가 비용이 발생해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비용을 청구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돈을 벌려다 오히려 손해만 보는 경우도 많다는 게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하소연이다.

조달청이 이 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공공조달 시장에서 추진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사업 제값 주기'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통해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젊은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게 이 정책의 취지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내놓은 것이 공공정보화 사업을 설계와 구현(시공)으로 분할해 발주하는 설계분할발주제. 1개 업체가 설계와 구현을 모두 담당했던 것을 앞으로는 설계와 구현에서 각각 업체를 선정해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우선 3개 공공정보화 사업을 시범적으로 추진해 보완점을 개선하고 법률정비가 필요할 경우 대책도 강구할 방침이다.

조달청은 설계 분할발주가 실행되면 사용자의 요구가 적극 반영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설계서를 완성한 뒤 구현작업에 들어가게 돼 현재 빈번히 발생하는 재작업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분할발주에 힘입어 재작업 비율이 40.3%에서 2.2%로 대폭 감소했고 품질만족도도 44%에서 70%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조달청은 분할발주가 무엇보다 소프트웨어 설계 및 구현 업체들이 발주기관과 동등한 위치에서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주기관이 요구하는 기능을 담아 설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구현에 나서게 됨에 따라 발주기관이 추가 과업을 강제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설계변경 등 추가 과제를 요구하게 되면 발주기관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자연스레 소프트웨어 업체가 제값을 받고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분할발주가 소프트웨어 설계업체를 양성하고 유능한 청년 인재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수 기회가 될 것으로 조달청은 기대하고 있다.

취임 이후 줄곧 소프트웨어 산업 활성화에 올인해온 김상규 청장은 "소프트웨어 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부가가치율이 2배 이상 높은데다 취업유발계수도 1.4배에 이르지만 중소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하청업체에 머물며 경쟁력을 강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보화 사업 분야에서 불공정 발주 관행을 바로잡아 소프트웨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박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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