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과세상] 궁궐 속 감춰진궁녀의 비밀

■ 궁녀(신명호 지음, 시공사 펴냄)<br>왕을 유혹하는 악녀인가<br>나라를 구하는 성녀인가


궁녀의 외출. 어른 궁녀들 사이에서 어린 궁녀가 걷고 있다. /사진제공=시공사

연산군 사로잡은 장녹수, 갑신정변 혁명가 고대수… 숨겨져왔던 진실 파헤쳐

궁녀 자격·조직 특성이어 인간적 사랑·성욕 등 조명


"(장녹수는) 왕을 조롱할 때는 마치 어린 아이 다루듯 했고, 왕을 욕할 때는 마치 노예를 대하듯 했다. 왕이 아무리 노했다가도 녹수만 보면 기뻐서 웃었으므로, 상 주고 벌 주는 일이 모두 그의 입에 달려 있었다."


부귀 영화에 눈이 멀어 표독스런 얼굴로 음모를 꾸미는 사람, 후궁이 되기 위해 요염한 자태로 왕을 유혹하는 악녀. TV 드라마나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궁녀의 이미지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혹 우리가 알고 있는 궁녀는 매체를 통해 만들어진 상상 속의 인물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책은 이러한 의문에 충실히 답해준다. 궁녀의 출신 성분부터 권력을 둘러싼 암투, 체계적인 조직구조, 목숨을 건 뜨거운 스캔들 등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 드러나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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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6개 부분으로 나눠진 책은 첫 장 '역사의 파편에서 찾아내는 궁녀의 진실'을 통해 그간 궁녀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당대에는 궁녀를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곧 왕의 신성한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로 인해 궁녀의 실체를 찾으려면 무의식적인 역사의 기억들, 잠꼬대나 술주정으로 무심결에 남겨 놓은 역사의 흔적까지 낱낱이 뒤져야 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대표적인 궁녀들을 대거 등장시킨다. 뛰어난 가무로 연산군의 마음을 빼앗은 나쁜 궁녀의 대명사 장녹수와 갑신정변의 배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혁명가 궁녀 고대수, 명나라 영락제의 사랑을 받은 죄로 순장 당한 비극적인 운명의 공녀 청주 한 씨 등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궁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했던 자격요건과 그들의 출신성분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흔히 궁녀라 하면 왕의 여자로 생각하기 쉽다. 이런 선입견은 왕이 모든 궁녀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왕이라 해도 실제로는 자신에게 소속된 궁녀들만 관할할 뿐 관할을 벗어나는 궁녀(왕비, 대비, 후궁, 세자궁에 소속된 궁녀)에 대해서는 선발권조차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또, 궁녀의 입궁 시기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사례를 소개한다. 조선 시대 궁녀들의 입궁 나이는 빠르면 네 살에서 여섯 살, 늦어도 열두 살 안팎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겨우 젖을 뗄 만한 나이에 궁에 입궁한다니 놀라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고종 때 조선 왕실의 특수한 상황을 빌려 설명한다. 당시에는 자식이 없는 대비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최고 어른이던 신정왕후 조 씨를 비롯해 명헌왕후 홍씨, 철인왕후 김 씨까지 모두 자녀를 두지 못했다. 당연히 적적한 노년을 보냈을 터. 직설적으로 말하면 아이를 낳아 길러 보지도 못한 채 무료한 노년을 보내는 대비들을 위해 어린 수양딸 노릇을 하러 네 살의 어린 나이에도 입궁이 가능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궁녀 조직의 특징에 대해 상세히 풀어놓는다. 제 스스로도 궁녀 신분이면서 궁녀를 돌봐주던 하녀를 따로 뒀다는 이야기와 이들 사이의 에피소드가 꽤 흥미롭다. '궁녀의 일과 삶'부분에서는 그들이 일하며 받았던 월급, 재산 규모 등 구체적인 생활상이 소상히 그려진다. 권력을 쫓아 주인을 배신했던 상궁 난이의 이야기와 당대 부동산 재벌로 등극한 상궁 박씨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궁녀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 풀어놓는다. 철저히 성욕을 억압 받아야 했던 구중궁궐에서 간통 사건을 일으키거나 간통 사건에 빠졌던 후궁과 궁녀, 내시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특히, 세종의 큰며느리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다 궁녀와 동성애에 빠져 궁궐에서 쫓겨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면서도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성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만 3,000원.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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