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IMF위기 이후 경제문제를 이야기할 때마다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온다. 구조조정 이야기를 하다 보면 “농업도 경쟁력을 가지려면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농업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라고 답답하다는 투로 나에게 물어오는 경우가 많다. 농업은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가? 그것은 오해다.
바람 잔잔한 날 바다를 보면 고요하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해류는 도도히 흐른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던 경포 앞바다에도 지난 주부터 한류가 밀려와 수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들어가기 힘들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바다는 끊임없이 흐른다는 것을 느낀다. 계곡과 같이 소란스럽지 않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농업도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쟁력 있는 농가로 생산이 집중되는 구조조정이 놀랄 만큼 진행되고 있다.
농가의 평균 경작면적을 보면 지금도 1.4㏊(4,100평)밖에 안된다. 지난 20여년 동안 500여평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정말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자.
최근 통계에 의하면 경작규모 3㏊ 이상인 대농의 수자가 6%밖에 안되지만 총경지의 26%를 차지하고 있다. 10년 전에는 10%였으니 생산집중이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쌀의 경우 경작규모 2㏊ 이상인 농가 8%가 총면적의 32%를 차지한다. 시설채소 농가는 2,000평 이상 경영하는 상층농가 10%가 전체 생산의 47%를 생산하고 있고, 한우도 20두 이상 키우는 농가 6%가 총생산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구조조정과 생산집중이 진행될수록 그만큼 영세농의 소득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0.5㏊ 이하의 영세농가가 34%를 차지하지만 생산비중은 8%밖에 안되고 최근 7년 사이에 소득이 38%나 감소하였다. 그 결과 최상ㆍ하위 계층 농가간의 소득 격차가 7.1배로 늘어나 도시가구의 5.4배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요컨대 농업부문의 안을 들여다보면 구조조정이 괄목할 만큼 진행되는 가운데 소득문제가 영세농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퇴출되고 거기에 고용되었던 사람들은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이동한다. 이것이 비농업부문의 구조조정 과정이다. 그러나 소득기회를 잃은 중고령 농민은 갈 곳이 없고 영세농으로 퇴적된다. 이것이 지금의 농업 문제다.
<이정환(농촌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