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재평가없이 연내 부채비율 200% 달성은 불가능하다던 재계가 결국 정부의 압력에 못이겨 재무구조개선약정 수정안을 제출했다. 지난달말 우여곡절끝에 재무구조개선약정 수정안을 제출한 현대와 대우는 겉으로는 『최선을 다했다』며 안도하는 모습이다.그러나 속사정을 살펴보면 다른 얘기가 들려온다. 요즘 각 그룹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외양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들은 『재무구조개선약정은 계획일 뿐이다. 현실은 전혀 별개』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재무구조개선약정을 대폭 수정하느라 바빴던 지난달말 현대와 대우 관계자들은 『정부의 강압에 못이겨 외자유치, 자산매각 등 구조조정목표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했다』며 『실행과정이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고 실토하고 있다.
연내 부채비율 200% 달성을 주된 내용으로 한 재무구조개선약정 수정안이 계획대로 실천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같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2일 영국 BBC방송과의 회견에서 『5대그룹중 현대와 대우그룹의 부채비율 축소는 쉽지않을 것같다』고 말했다.
◇현대와 대우의 재무구조 개선계획=현대는 1일오후 늦게까지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실랑이를 벌였다. 이날오후 5시께 일차로 제출한 수정안은 연말 부채비율이 200%를 약간 넘는 내용이었다. 결국 주채권은행의 닥달끝에 저녁에야 겨우 199%수준으로 서류를 뜯어고쳤다.
현대는 수정안에서 5개 소그룹에 포함되는 계열사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를 다 판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론 어느 계열사든 5개 소그룹에서 제외되는 경우는 없다는게 중론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 자산 1조원이상의 계열사 여러개를 판다고 했는데 회사이름을 꺼내놓고 꼼꼼히 따져보면 매각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찾기가 쉽지않다. 나름대로 다 「그룹에 남아야할 이유」가 있는 상황이다.
대우는 현재 35개인 계열사를 오는 6월말까지 22개로 줄이고 연말에 10개만 남긴다는 계획이다. 당초 하반기에 집중돼있던 계열사 축소계획이 상반기로 대폭 앞당겨진 것.
또 지난해말 제출한 약정에서는 끝까지 살아남는 계열사에 몇몇 작은 계열사를 흡수시키는 계획이 많았던데 비해 수정안에서는 외자유치후 계열분리나 매각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돈이 들어오는 구조조정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유선방송 등 ㈜대우가 갖고있는 사업분야의 일부를 떼어내는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 계열사수 축소는 아니지만 현금흐름 개선효과는 더 크다는 평.
증자와 외자유치계획은 양 그룹이 제시한 재무구조개선수단의 핵심이다. 현대는 전자나 건설 등 핵심 우량계열사를 중심으로 증자를 실시할 계획이다. 그 규모는 1조원을 넘을 전망. 대우는 상대적으로 실질 증자규모가 적다. 5,000억원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외자유치는 5대 그룹 모두가 신경쓰는 분야인데 대우는 당초 목표 33억3,800만달러보다 크게 늘어난 40억달러를 제시했다. 현대는 당초의 45억6,500만달러 목표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달성 가능성=자산 및 계열사 매각, 외자유치 등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동원하기로 한 방법들은 국내외 투자자들과 협상을 거쳐 매각이 성사되거나 실제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상대가 있는 작업인만큼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99년말」이라는 시한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않다.
특히 외자유치의 경우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실제 자금유입은 수년에 걸쳐 나눠서 이루어지는 사례가 많다. 각 그룹들은 「실제도입액」만을 기준으로 외자유치 실적을 평가하는 금융당국의 방침에 반발하면서도 불만을 속으로 삭이고 있다. 그럼에도 각 그룹들은 계열사를 통한 외자유치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증자도 증시여건 등을 감안할 때 쉽지만은 않다. 현대는 지난 1·4분기중 건설 5,751억원 등 총 1조5,000억원에 달하는 증자를 이미 단행한 상태. 대우는 단 한건의 증자도 없었다. 증자계획의 달성여부는 증시여건에 달려있다.
자산매각은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나눠 생각할 수 있다. 대우가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4만3,000평규모인 부산 수영만부지의 경우 구매능력을 가진 상대방을 찾기가 쉽지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께 시한에 기면 『팔려고 내놔도 안팔리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금융자산은 상대적으로 매각이 쉬울 전망.
◇그룹의 의지가 중요하다=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 각 그룹이 스스로 만든 재무구조 개선방안인만큼 실천의지가 확고하다면 상당한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도 분기별 평가와 금융제재 등 다양한 감시수단을 충분히 활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우 관계자는 『한때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버텼지만 어쨌든 자산재평가없이 부채비율을 200%이내로 낮추는 계획을 만들어내지 않았느냐』며 『김우중 회장이 최근 과감한 내부 구조조정을 선언한 만큼 강한 의지를 갖고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측도 일단 제출된 계획인 만큼 달성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수 밖에 없지않느냐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대와 대우가 연말께 최대한 노력을 했지만 여건상 어쩔 수 없었다고 나자빠질 경우 금융당국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손동영 기자 SON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