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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1997년 9월부터 2000년 10월까지 B씨로부터 7차례에 걸쳐 3,200여만원을 빌렸다. 월 이자는 40%였다. 연이율로 계산하면 480%의 살인적인 금리였다. A씨가 2001년 2월까지 원리금으로 갚은 금액만 1억1,000만원. 원금의 3배가 넘는 돈을 갚은 셈이다.
이후에도 A씨는 돈이 더 필요해 B씨로부터 15일 이자 10%, 연이율 243%를 웃도는 이자로 1,570여만원을 추가로 빌렸다. 그러나 A씨가 돈을 갚지 않자 B씨는 "원금과 이자 4,800만원을 달라"며 A씨와 A씨의 연대보증을 선 C씨를 상대로 대여금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소송에서는 연이율 200%를 웃도는 고리(高利)가 사회질서에 반하므로 무효라고 보고 적정 이율을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는 갚지 않아도 되는지, 연이율 480% 고리로 빌린 뒤 갚은 돈에 대해 적정 이율 범위를 초과하므로 이미 지급된 돈을 부당이득으로 보고 B씨에게 반환을 청구할 수 있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었다.
쟁점과 관련해 대법원은 이자제한법이 존재하던 1961년과 1988년에는 모두 '소정의 제한이율을 초과한 이자를 임의로 지급한 경우 이는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고, 그 불법원인이 대주와 차주 쌍방에게 있어 차주는 지급된 이자의 반환을 구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A씨의 재판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이자제한법이 폐지돼 있었던 터라 법원의 판결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일단 1·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모두 연이율 200%를 웃도는 고리의 이율에 대해 "경제적 약자인 채무자의 열악한 지위와 대여 당시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 특히 자본시장의 상황과 당사자의 계약위험 등을 고려하면 연 243.33%의 이자 약정 중 연 70%를 초과하는 부분의 이자 약정은 지나치게 높은 이율로서 사회질서에 반하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했다.
A씨가 약정한 이율은 15일에 원금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므로 이를 연리로 환산하면 연 243.33%에 이르러 1년분 이자액이 원금의 2.43배에 이른다는 얘기다. 또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부업자가 개인에게 금전을 대부하는 경우 대부금 가운데 3,000만원 이내의 금액에 대한 이자율은 연 70%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이율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이어 재판부는 앞선 대법원 판례를 들어 "연 70%를 초과하는 부분의 이자 약정이 무효라고 한다면 연 70%의 이율을 초과하는 이자를 선이자로 공제한 경우 그 초과 부분 역시 무효이므로 채무자는 실제 교부받은 대여금액에다가 이 금액에 대한 유효한 이율 범위 내의 이자액을 합산한 금액만을 대여원금으로서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A씨가 '변제액 중 적정 이율 범위를 초과하는 금액은 부당이득에 해당되므로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청구한 부분에 대해서는 1·2심 재판부는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당사자 사이에 약정된 이율의 일부가 사회질서에 반하는 것으로서 일부 무효가 된다고 하더라도 채무자가 당초 약정이율에 따른 이자를 임의로 지급한 경우에는 이를 무효라 할 수 없고 따라서 그 반환을 구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장과 대법관 모두가 참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로 올라갔고 전합에서는 열띤 토론 끝에 지난 2007년 2월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돈을 빌려 준 대주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초과하는 이율을 약정해 지급받은 행위는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얻은 것이고 차주에게는 과도한 반대급부나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다시 말해 대주의 불법성이 차주의 불법성에 비해 현저히 크다고 보고 차주가 그 이자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전원합의체는 "대주가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한도를 초과하는 이율의 이자를 약정해 지급받은 것은 그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얻고 차주에게는 과도한 반대급부 또는 기타의 부당한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차주는 그 이자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전원합의체는 A씨가 B씨를 상대로 정당한 이율 범위를 초과해 지급된 돈에 대해 반환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판시했다.
이후 A씨 사건은 파기환송심으로 내려갔고, 2007년 7월 결국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확정됐다. 다만 이자제한법이 없는 상황에서 대주에게 불리한 판결이 내려졌던 만큼 당시 전합 회의 과정에서 상당한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대법관들은 회의 과정에서 고리의 이율 부분을 무효로 선언하는 마당에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하면 전합 선고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일부 대법관들은 법원이 너무 적극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반대 의견을 가진 일부 대법관들은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한도란 약정 당시의 경제·사회적 여건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일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법률적인 평가나 가치판단이 개입돼야만 비로소 그 구체적인 범위를 확정할 수 있다"면서 "당사자로서는 무효의 기준과 범위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 당시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상황에서 대주가 고리를 인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없어 대주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반대 의견을 가진 대법관은 "그간 이자제한법에 의해 무효로 되는 이자약정의 범위를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지만 당사자 사이의 이율 결정은 자유로운 시장경제 기능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고려에서 1998년 1월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만큼 더 이상 이를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게 됐으며 다수의견도 구체적으로 무효로 되는 기준과 범위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전합 판결은 시장경제 질서에서 차주를 경제적 약자로 본 것이었다. 당시 이자제한법이 없었던 상황에서 대법원 결정은 적극적으로 사법의 정의를 실현한 판결로 평가됐으며 같은 해 이자제한법을 부활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당시 판결은 이자제한법이 없는 상황에서 대주와 차주와의 관계를 어떻게 볼 지에 대해 대법원이 적극적인 해석으로 차주를 경제적 약자로 본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