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전문경영인에게 맡기자(사설)

한국경제가 적신호를 보인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30대 기업이라는 거대 재벌들이 힘없이 쓰러지는 절박한 현실로 나타났다.그동안 경제력을 집중해 우리 경제를 지배해온 재벌들이 세계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대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는 데는 분명한 원인이 있다. 세계시장을 너무 쉽게 보고 무모하게 사업을 확장한 것이 첫째가는 원인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무모한 정책운용도 한 몫을 했다. 몇 해전부터 경상수지적자가 쌓여감에도 외국자본이 들어와 일시적으로 외환사정이 넉넉해지는듯 하자 우리 돈이 달러보다 강세를 보이게 안이한 외환정책을 폈다. 나아가 해외여행의 자유화, 투자를 권장하고 심지어 외국에서의 부동산투기를 조장하는등 외화낭비를 부추겼다. 최근 잇따른 재벌기업의 도산은 일차적으로 기업의 책임이다. 우리 기업들이 경영환경의 변화를 예견하지 못한채 소유분산을 등한히 하고 외형위주의 과도한 투자를 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한 분야에서라도 세계 일류가 된다는 장인의식이 결여된채 몸체부풀리기에만 열중했던 업보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재벌을 능가하기 위해 신기술로 승부하기 보다 상대재벌이 투자한 사업에 중복투자해서 자원을 낭비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무모한 외형투자가 화근 그같은 선단식 운영은 불황기에 운신의 여지를 좁혀 주력 기업이 망하면 전체기업이 망하는 부도도미노를 초래하고 있다. 유망한 기업은 독립시켜야 함에도 부실기업과 한데 묶어놓음으로써 모두를 부실하게 만든 것이다. 이같은 무모한 투자확장의 배경으로 한 사람의 재벌총수가 지배하는 소유자중심 경영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소유자중심 경영체제는 창업자시대에 불가피하게 형성된 것이다. 창업자들은 기업운영에 성공한 당대의 전문경영인이므로 큰 문제는 없었으나 2세경영으로 전환되면서 전문경영과 멀어진 것이 문제라고 지적할수 있다. ○의사결정 독단 창의력 해쳐 물론 2세 가운데서도 젊고 유능한 전문경영인이 있을 수 있으나 지난날 어려웠던 시절에 돈버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체험한 창업주의 경영자세에는 못미친다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문경영인이 아닌 소유자들은 사업환경에 대한 분석이 신중하지 못하고 독단적인 투자결정을 감행하는 속성이 있다. 더욱이 기업집단의 순위경쟁에 목표를 두는 일부 재벌2세들의 경우 외형위주의 무모한 투자확대를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외형순위가 국내에서는 절대적인 경제력으로 평가될지 모르나 대외경쟁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전문경영인이라면 기업의 경쟁력을 고려해 적절한 투자규모를 선택할 것이나 소유자경영에서는 무리한 투자를 일삼는 경향이 있다. 수십개의 계열기업을 거느린 재벌총수가 경영을 좌우하면 개별기업은 신축성있는 경영이 불가능해져 경영효율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물론 재벌들도 연구소·기획실·비서실등에 유능한 인재를 배치해 사업환경과 기술개발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있지만 최종적인 의사결정이 한사람에 집중됨으로써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결정을 벗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경쟁력 소유분산에서 또한 아무리 유능한 연구진을 동원한다하더라도 업종에 따라 기술과 사업환경이 다른 계열사의 조건들을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의사결정이 왜곡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계열사를 통괄하는 것은 계열사의 창의와 책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경영능률의 극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소유자의 의사결정이 아무리 효율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계열사의 자발적인 결정이 아니므로 창의적 경영이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생긴다. 젊은 2세총수의 등장과 함께 계열사의 경영진도 젊은 사람으로 교체돼 창업세대의 전문경영인들이 퇴장하는 것도 최근의 경영불안을 초래한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경영자가 세계시장에서 노련한 외국경영자들과 경쟁을 하기는 힘에 부칠 것이다. 젊은 경영자와 노련한 경영자가 상호협력하에 세계시장을 공략해야할 필요가 있음에도 창업세대의 경영자를 너무 일찍 도태시켜 세대간의 단절을 초래한 것은 큰 손실이다. 잇따른 기업도산 사태를 맞아 정부와 기업은 기업의 소유분산과 전문경영체제 확립을 국가경쟁력강화 차원에서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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