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정부가 기업에 변호사 강매하는 꼴"

■ 자산 3000억이상 준법지원인 의무화<br>변호사 1명 임금이 사무직 2~3명 맞먹어<br>"소규모 기업에 효과 있을지 의문" 지적도


정부가 28일 자산범위를 3,000억원 이상으로 낮춘 준법지원인제도를 입법예고한 것은 지난 1년여 동안 초과이익공유제 추진, 감세 철회 등 일련의 반(反)기업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 8월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동반성장을 강조하면서 대ㆍ중기 상생, 일자리 창출, 사회공헌 등 다방면에 걸쳐 대기업 책임론을 부각시킨 것에 가닿는다. 현 정부는 출범 초기 "전봇대를 뽑겠다"며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전면에 내걸었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집권 후반기 들어 친기업 정부는 '대기업 때리기'. 집권여당과 정부 각료들의 잇단 대기업 폄하 발언에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의 공정거래 협약식 이벤트,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장관의 정유사 공격, 직접적인 물가통제, 정부여당의 감세철회 등 지난 1년여 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쉴 새 없이 기업 부담을 늘려왔다. 급기야 동반성장위원회가 개념조차 모호한 초과이익공유제를 들고 나와 재계와 치열한 갈등을 빚다 지난 13일에는 9명의 대기업 동반위 위원들이 본회의를 집단 거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이처럼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반기업 정책과 언행들이 내년 총선과 대선 시즌을 맞아 급속히 확산 중인 포퓰리즘과 섞여 도를 더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준법지원인제도 역시 변호사들의 밥그릇을 지켜주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이 합작해 기업의 부담을 늘린 것으로 기업경시 풍토가 극에 달한 단적인 예다. 틈만 나면 기업 탓을 하며 공격하다가도 은근슬쩍 기업에 손을 벌리는 이중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준법지원인 적용기업 자산규모를 2조원 이상으로,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단체는 자산 1,000억원 이상을 주장해왔다. 학계는 절충안으로 5,000억원 이상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는 준법지원인 적용기준을 학계 절충안보다도 더 낮은 자산규모 3,000억원 이상으로 확정하면서 결국 법조계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대해 재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산총액 3,000억원 이상의 상장기업에 준법지원인을 상시 고용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에 큰 부담이 될 것"이라며 "고임금의 준법지원인 일자리 창출보다는 5~6명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개선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장 준법지원인을 새로 채용해야 하는 중견ㆍ중소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자산 4,000억원대의 욕실용품 전문기업 관계자는 "고액 연봉 직원을 새로 뽑아야 하니 당장 추가비용 지출이 걱정거리"라며 "우리처럼 작은 규모의 기업에 준법지원인을 두는 게 과연 얼마나 효율적일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자산 6,000억원대의 중견 생활용품업체 관계자도 "변호사 한 명의 임금이면 일반 사무직 직원 2~3명을 더 채용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더욱이 준법지원인이 사내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 자체가 제한적"이라고 토로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준법지원인제도는 사실상 정부가 기업들에 억지로 변호사를 강매하는 것과 다름 없다"며 "사내에 변호사를 두는 것은 경영자가 판단할 몫인데 이를 정부가 나서서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