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우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들은 8년 만에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받게 됐다. 일부 피해자가 1997년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소송을 내 2003년 패소 판결이 확정된 것까지 감안하면 16년 만의 승소 판결이다.
서울고법 민사19부(윤성근 부장판사)는 10일 여모(90)씨 등 4명이 신일본제철 주식회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에게 각 1억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여씨 등 4명은 1941~1943년 구 일본제철의 모집 담당관이 충분한 식사와 임금, 기술 습득, 귀국 후 안정적인 일자리 등을 보장한다며 회유해 일본에 갔으나 오사카제철소 등에서 자유를 박탈당한 채 고된 노역에 시달리고 임금마저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며 1인당 1억원의 위자료를 달라고 소송을 냈다.
앞서 원고 4명 가운데 여씨와 신모(87)씨는 1997년 12월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임금지급과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기했으나 패소했고, 이 판결은 2003년 10월 최고재판소에서 확정됐다.
이에 우리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 “일본 판결의 내용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과 기타 사회질서에 비춰 허용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본의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효력이 인정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적 없는 원고 이모(89)씨와 김모(84)씨에 대해서도 “구 일본제철의 불법 행위를 인정하지만, 구 일본제철은 신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다르고 채무를 승계했다고도 볼 수 없다”며 같은 결론을 냈다.
반면 대법원은 작년 5월 “일본 판결의 이유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 충돌하는 것이다. 이런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된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구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의 법적 동일성을 부인한 원심의 잘못을 지적하고, 1965년 6월 한일 양국이 체결한 청구권협정에 따라 개인의 청구권도 소멸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법원은 이모(90)씨 등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도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환송했다. 부산고법 민사5부(박종훈 부장판사)는 오는 30일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디지털미디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