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일반

[이슈 분석] 부실공사 책임 가리기 힘들어 혈세만 더 축낼 우려

■공공공사 분리발주 문제없나<br>"하도급 불공정 관행 뿌리뽑자" 당국 초강수 카드 빼들었지만 <br>전문사 재하도급 등 해결 못해 특정사 배만 불려줄 가능성도<br>처벌 강화·공사비 직불 등 현행 제도 운용의 묘 살려야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 건설업체 A사가 대구의 한 아파트 공사 하도급 계약에서 부당하게 하도급 대급을 낮췄다며 3억4,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통상 하도급 공사는 지명경쟁입찰 방식으로 발주가 되는데 최저가로 입찰한 업체를 선정하지 않고 재입찰을 실시해 부당하게 공사금액을 낮췄다는 것. 당시 공정위는 예정가액의 95%를 초과할 경우에 최저입찰가를 제시한 몇 개 업체를 대상으로 다시 입찰을 실시한다는 내부 방침이 불공정 거래 행위라고 지목했다. SK건설은 이 같은 공정위의 판단에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각 공종별로 분리발주돼 2010년 완공된 인천 부평구 산곡3동 소재 대정초등학교의 다목적 강당은 준공 검사필증을 받은 지 불과 20여일 만에 원인 모를 화재로 몽땅 불타고 말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식 결과 화재의 원인은 비상 조명등의 전선이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인천 북부교육청은 소방설비를 담당한 업체에 복구비용 8억2,000만원 등을 구상 청구했지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법원의 판결로 받아내지 못했다. 부실 시공의 책임은 결국 국민 혈세로 메워졌다.


경제민주화 바람이 건설업계에도 강하게 불고 있다. 정책 당국이 하도급 불공정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공공공사 분리발주제도 도입이라는 초강수 카드를 들고 나선 것. 지금껏 '갑'인 종합건설사의 숱한 요구를 감내해왔던 전문건설업계도 쌍수를 들며 반기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적 논리를 따른 분리발주제도가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해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도급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만연한 불공정 관행=최근 공정위는 서울지하철 9호선 2단계 공사 916공구 시공사인 B건설의 하도급 계약상 불공정 행위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B사를 제소한 하도급 업체는 "시공사가 2010년 입찰 당시 낙찰 예정가액을 공개하지 않으면서 특별한 이유 없이 다섯 차례나 유찰을 거듭해 낙찰가격을 과도하게 낮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현행 하도급법과 대법원 판례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최저가 입찰금액보다 낮은 금액으로 하도급 대금을 결정하려는 행위를 불공정 거래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단가 후려치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지난해 대한전문건설협회가 인천지역 회원사 216곳을 대상으로 불공정 하도급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41%가 종합건설사로부터 이중 계약서 작성을 강요 받았다고 답했다.

관련기사



전문건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가짜 계약서를 낙찰률 82% 이상으로 만들어 발주처에 제출하고 실제로는 30% 내외의 초저가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이중 계약도 허다하다"며 "그동안 단가 후려치기, 이중 계약, 불공정 특약 같은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제도가 수없이 도입됐지만 결국 유명무실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착화돼 있는 업계의 불공정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해 정책 당국이 내놓은 카드가 바로 공공공사 분리발주제도인 것이다.

◇가해자 대 피해자 논리가 쟁점 흐려=문제는 이 같은 '가해자 대 피해자'라는 구도가 여론의 힘을 얻으면서 공공공사 분리발주제도의 쟁점이 효율성이 아닌 정치적 관점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여론에 매몰돼 자칫 혈세를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분리발주의 가장 큰 단점은 부실 공사에 대한 책임 소재를 묻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준공 이후 국민 혈세가 추가로 들어갈 소지가 클 뿐 아니라 법적 분쟁에 따른 비용도 발생한다.

또 발주처가 종합건설업체만큼의 종합적 관리 역량을 갖춰야 하는 것도 문제다. 결과적으로 건설 현장의 공사관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학계의 한 전문가는 "분리발주는 본래 경쟁체계를 강화하는 제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공정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호도되고 있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공공공사의 경우 효율성 문제가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더욱이 분리발주제도로 건설업계의 만연한 불공정이 모두 해소된다는 보장도 없다. 특히 종합건설업체에 하도급을 받은 전문건설업체가 다시 영세업체에 재하도급을 주는 불법 하도급 문제, 전문건설업체와 '십장(什長)'으로 대변되는 용역업체와의 불공정 관행 등은 여전히 숙제로 남게 된다. 일각에서는 제도권 바깥에 있는 병(丙)에게는 갑(甲)보다 을(乙)이 더 독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는 현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말 불공정 행위의 뿌리를 뽑는다고 하면 수면 아래 감춰진 전문건설업체의 불공정 행위 문제까지도 모두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결국 특정집단의 배만 불려주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 운용의 묘를 살려야=전문가들은 분리발주제도가 하도급상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근절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기 때문에 처벌을 강화하는 등 현행 제도의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단가 후려치기, 이중 계약 등의 문제는 현재 서울시가 종합건설업체를 거치지 않고 전문건설업체에 공사대금을 바로 지급하는 '대금e바로지급시스템'과 같은 제도 도입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암세포만 죽이는 처방을 써야지 다른 세포까지 모두 죽이는 처방을 하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며 "경제민주화도 좋지만 분리발주제도 도입보다는 현행 제도를 잘 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