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쇼(show)라도 계속 돼야 한다

대통령 주재 규제개혁회의에

野 "정치쇼" 비난 목소리 높이고 무용론 주장 불구 일부 성과 거둬

쇼라도 해야 공무원 규제완화 나서고 국민·기업 옥죄는 나쁜 규제 없어져


"늘 우리가 단순히 햄버거를 판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Remember, We are not in hamburger business. We are in show business.)" 햄버거 체인 맥도널드 왕국을 건설한 레이 크록이 은퇴 후 점포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남들과 다른 점을 '보여주려는' 노력이 글로벌 브랜드를 만든 힘이라는 얘기다.

쇼(show)는 한마디로 구경거리를 뜻한다. 관객이나 고객에게 뭔가 볼 만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쇼는 무대에서 시각적인 요소를 통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무대예술을 말한다. 하지만 근래에는 공연장의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현장에서 쇼를 볼 수 있다. 현대인들은 문화는 물론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서 쇼를 접할 수 있다. 쇼를 쉽게 구경할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정치권이다.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온갖 쇼가 난무한다.


몇 해 전 국회 국정감사 기간에 목격한 일이다. 노동 관련 공공기관 국감장에서 첫 질의에 나선 모 의원. 그는 질의 시간이 시작됐는데도 주의를 두리번거리면서 "방송 카메라 언제 오나"라고 중얼거렸다. 1분여 뒤 국감장을 생중계하는 방송사의 카메라가 등장하자 그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큰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레디 큐!" 이 말과 동시에 그는 카메라를 향해 그래픽과 수치로 채워진 커다란 패널을 들어 보이며 질문을 쏟아냈다.

이런 정치쇼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다. 영국의 탐사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사우스웰은 2007년 펴낸 저서 '세계를 속인 200가지 비밀과 거짓말'에서 정치쇼를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저자는 '짜고 치는 정치쇼' 편에서 미국 대선후보의 TV토론을 정치쇼의 전형적인 예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은 1992년부터 '대선토론위원회(CPD)'라는 민간협회를 통해 비밀리에 토론을 조종했다. 양당은 대기업의 자금지원을 받아 토론 구조와 토론자, TV 방송 시간 등을 정확하게 짠 양해각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사회자의 후속 질의는 허용되지 않는다" 등 구체적인 내용이 34쪽에 걸쳐 담겼다.


특히 두 정당은 CPD를 움직여 자신들에게 껄끄러운 무소속 대선 출마자의 토론참여를 원천봉쇄하기도 했다. 1992년 대선에서 19%나 득표한 로스 페로가 바로 그 희생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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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정치권에서 정치쇼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모습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세월호 특별법 등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는 요즘에는 비난의 강도가 더한 듯하다. 야당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조차 쇼라고 비아냥거리는 판국이다. 이달 3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2차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 대한 야당의 반응이 그렇다. "충분한 토론이 없는 보여주기식 규제완화 쇼"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3월20일 장장 7시간에 걸쳐 TV로 생중계된 1차 끝장토론에서 제기된 규제완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인데 계속 회의만 하면 무슨 소용이냐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비판을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기는 하다. 정부는 당초 2차 회의를 지난달 20일 열 예정이었지만 규제개혁 성과가 미흡하자 바로 전날 부랴부랴 연기했다. 이후 관계부처 회의를 5차례 열어 규제완화 14건을 추가하는 벼락치기를 하고서야 두 번째 회의 날짜를 잡은 것이다. 당장 풀 수 있는 규제를 손 놓고 있다가 대통령 주재회의를 앞두고서야 푸는 행태를 보였으니 쇼라는 의심을 살 만했다.

그렇더라도 3차·4차·5차 규제개혁 회의는 계속돼야 한다. 이런 정치쇼라도 해야 공무원들이 규제완화를 위해 움직이고 국민생활과 기업활동을 옥죄는 나쁜 규제가 풀릴 것 아니겠는가.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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