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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희의 ‘안단테 모데라토’] (8) 하루키, 리스트의 랑데뷰(Rendezvous)

북콘서트 ‘하루키의 순례를 떠난 해’ 공연 실황(사진제공=스톰프뮤직)

피아니스트 루실 정(사진제공=스톰프뮤직)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 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작곡가 리스트는 자신이 겪었던 순례의 여정을 피아노 선율로 그려냈다. ‘순례의 해‘는 그의 작품 중 손에 꼽을 만한 아름다운 명곡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소설엔 클래식과 재즈가 짙게 깔려있다. 하루키의 화제작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제목에도 ‘순례’라는 단어가 들어 있는 것처럼 소설의 내용 자체가 바로 리스트의 ‘순례의 해’에서 나왔다.


쓰쿠루는 사라진 후배가 놓고 간 LP판을 듣는데, 그것은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이 녹음한 3장짜리 리스트의 ‘순례의 해’ 박스다. 쓰쿠루는 그중 제2면의 여섯 곡을 반복해 들으며 우울과 격리의 구렁텅이로부터 점점 빠져나온다. 쓰쿠루는 친구들로부터 자신을 버렸던 이유를 듣기 위해 네 명을 차례로 찾는 순례의 길에 오른다. ‘순례의 해’, 마치 리스트의 곡명처럼 말이다. 하루키와 리스트의 랑데뷰, 음악을 통해 이들은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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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속 클래식과 재즈 음악이 두루 책갈피를 타고 흐른다. 이런 하루키 소설 속 음악을 클래식 무대로 고스란히 불러냈다. 음악을 들으며 소설과 관련한 얘기를 나누고 분위기를 느껴보자는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1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하루키 소설을 주제로 한 북콘서트가 최초로 열렸다.

크게 세 개의 테마로 진행된 공연에서 <색채가 없는..>와 관련 주제로 ‘나는 누구인가? 어떤색을 가진 사람인가?’라는 물음을 자연스레 관객들에게 제기했다. 이날 진행자로 나선 방송인 오상진(33)은 대학시절 첫사랑에게 실연당했을 때 느꼈던 삶의 무미 건조함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 사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하루키의 초기작품 <양을 쫓는 모험>. 소설속에 아이러닉하게 묘사된 쇼팽 ‘발라드 3번’을 들으며 관객들은 아득한 어린시절 자신만의 색깔을 떠올리며 감상에 젖는다.

오상진의 섬세한 해설과 더불어 무대에 선 피아니스트는 루실 정. 그녀는 피아니스트 라자르 베르만에게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서 사사를 받았다. 특히 라자르 베르만은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에도 언급된 피아니스트로, 그의 애제자인 루실 정이 참여한 이번 북콘서트는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고있다.

피아니스트 루실정은 임신 5개월임에도 소녀와 같은 아담한 체구로 풍부한 표정연기와 다이나믹한 테크닉을 선보이며 하루키 소설 속 음악의 감동을 더했다. <1Q84>에 등장하는 바흐의 ‘평균율’을 시작으로, <양을 쫓는 모험>에 배경이 된 쇼팽 ‘발라드 3번’, 리스트의 ‘순례의 해’까지..관객들은 그간 가볍게 흘려 읽었던 하루키 소설 속 음악에 대해 연신 감탄을 금치 못한다. 다만 저작권 문제로 하루키의 소설 속 구절을 모두 읊을 수 없어 책과 음악에 대한 연관 설명이 다소 부족했다는 점이 관객들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왜 하필 클래식 무대위에 하루키였을까. 하루키 소설 속에는 늘 음악 꽃이 피어난다. 소소한 것들에 대한 섬세하고 따뜻한 시각,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묘한 매력을 불러일으키는 문체, 여기에 절묘하게 곁들여진 클래식 음악까지. 클래식 무대에 하루키가 전면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강력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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