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북측 조문단의 면담에 대해 대북 전문가들은 남북 당국 간 대화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진단했다. 비록 남북 정상 간에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형식은 아니었지만 특사 조문단의 입을 빌려 구두 메시지를 서로 교환했다는 점에서 남북 당국 간 고위급 대화의 물꼬를 여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평가다.
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남북관계가 팽팽한 대치와 화해를 반복하는 사이클을 보였다면 이번 조문단 방문 이후 그동안 경색됐던 남북관계를 마무리하고 화해 분위기를 만들려면 남북이 서로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각을 조금씩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적극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남북관계를 관리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며 “이산가족 상봉이나 금강산관광 등 앞으로 있을 여러 남북 간 협력사업을 위한 환경이 만들어졌고 남북 최고위층의 간접대화를 통해 향후 어떤 형식의 대화도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대외 위협 등을 통해 명분을 쌓아 후계구도를 만들어갔다면 이제는 실리로써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식 대북정책과 새로운 북한의 실리적 접근이 어느 정도 새로운 틀을 갖춰나가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이 당장 접점을 찾기는 어렵지만 의견 교환을 통해 경색 국면을 돌파할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앞으로 남북관계는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지만, 북미관계의 진전을 넘어서는 정도까지 가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북한의 적극적인 평화공세를 우리 정부가 어떻게 소화하는가가 중요하다”면서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적극 대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용석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북한은 조문단 방문을 적극적ㆍ공세적으로 활용했다”면서 “반면 우리 정부는 상대적으로 준비가 적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번 면담은 기본적으로 서로의 원칙적 입장이 전해진 면담”이라며 “기적으로 뚜렷한 결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장 실장은 또 “북한은 대외관계를 전향적ㆍ적극적으로 관리해가려는 자세를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며 “특히 북미관계는 일정한 진전 가능성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적으로는 현대와 북측 간 5개항의 합의가 대부분 이행되면서 최소한 박왕자씨 피격사망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정부는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핵문제 해결을 촉진하기 위해 전향적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특히 “북한도 핵문제의 진전이 있어야 남북관계의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쌍방이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함께 “앞으로가 중요하다”면서 “현대와 북한 간 합의문 중에서 특히 이산가족, 금강산관광이 쌍방 의지를 시험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