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미국, 우방국 잇단 동참에 한발 후퇴… AIIB 간접참여 추진

WB·ADB등 美주도 금융기구 파트너십 형태로 공동투자 검토

WB 지렛대 삼아 中 견제하고 亞 영향력 유지로 전략 수정

저개발국 독자 진출 한계… 中도 美 입장변화 환영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무산시키려는 데서 한발 후퇴해 세계은행(WB) 등 기존 국제금융기구들과 AIIB 간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AIIB 설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을 인정한 것으로 중국의 외교적 승리이자 미국의 AIIB 가입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바마 행정부가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미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관이 파트너십 형태로 AIIB의 개발 프로젝트에 공동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네이선 시츠 미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은 "미국은 국제적 금융구조를 강화하는 새로운 다자 간 기관을 환영할 것"이라며 "공동 금융 프로젝트는 AIIB가 기존 개발은행들과 경쟁하기보다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AIIB가 기존 국제기구와 같은 지배구조와 운영 기준을 채택한다면 국제금융 시스템을 촉진하고 주요 인프라 투자 갭을 메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가 AIIB 출범 자체를 무조건 막기보다 세계은행 등을 지렛대로 삼아 중국을 견제하고 대아시아 영향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AIIB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WSJ는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거나 AIIB가 중국 외교정책의 수단이 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함"이라며 "AIIB의 개발 프로젝트에 미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려는 목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는 AIIB의 지배구조가 불투명해 중국이 독단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간접 지원하거나 상환능력이 부족한 부패국가에 대한 외교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출범에 반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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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제사회가 속속 중국 편에 가담하면서 오바마 행정부는 갈수록 궁지에 몰리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대안도 없이 달러 권력 유지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신흥국의 불만이 크다. ADB에 따르면 공항·철도·다리·항공 등 아시아 역내국가들의 인프라 건설 부족자금은 매년 8,000억달러에 이른다. 컨설팅 업체 맥킨지도 오는 2030년까지 글로벌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금이 총 57조3,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미국의 영향 아래 있는 세계은행과 ADB의 자본금은 각각 2,232억달러, 1,650억달러에 불과해 급증하는 투자자금을 수혈하는 데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영국·독일·프랑스 등 우방들마저 AIIB 동참을 선언했고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도 속속 환영 의사를 밝히고 있다. 자국 내에서조차 "오바마 행정부가 중국 경제 부상이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다가 전략적 실책을 저질렀다"는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체면상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수년 내 AIIB에 가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프레드 버그스텐 명예소장은 "아직 몇 단계가 남아 있지만 (AIIB의 투명성 등이) 기준에 부합한다면 미국도 (가입을) 검토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과 앙숙인 일본 정부도 최근 조건만 맞으면 AIIB에 가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은 미국 정부의 입장변화에 대해 환영 의사를 밝혔다. 워싱턴 주재 중국대사관은 "중국은 기존의 국제금융기관과도 협력할 공간을 열어놓고 있다"며 "AIIB는 세계은행·ADB 등 국제기관과 상호 협력해 아시아 인프라 건설을 위한 투자와 금융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역시 독자적인 저개발국 진출전략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와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 막대한 자금지원을 대가로 인프라 투자와 원자재를 독식했지만 부정부패·환경파괴 등을 조장하고 국부를 훔쳐간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올 1월 당선된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이 15억달러 규모인 중국 기업의 항만 프로젝트 공사를 중단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또 경기둔화의 여파로 일부 국가에 제공한 차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은행 등과 동반 진출할 경우 국제적 신뢰를 쌓을 수 있고 투자금도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다는 게 중국 정부의 계산이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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