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인터뷰] 출범 2주년 맞은 한국연구재단 오세정 이사장

"젊은 과학자들 연구 지원 확 늘려야"<br>외국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재들 국내 환경 열악해 들어오기 꺼려<br>실패 위험 불구 독창적 연구 가능케 '성실실패 용인' 문화 확산시켜야


"외국에서 활발히 연구하던 과학자들도 귀국하면 실험에 필요한 연구장비를 갖추느라 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고 또 연구장비를 마련하는 데 힘을 쏟다 보니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악순환을 반복합니다. 젊은 신진 연구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지 않고는 우리나라는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내기 힘듭니다." 지난 26일로 출범 2주년을 맞은 한국연구재단의 오세정(58) 이사장은 최근 서울 염곡동 서울청사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대부분 박사학위를 받은 후 5~10년 내인 30대 중ㆍ후반에 수상 업적 논문을 썼는데 우리나라의 젊은 과학자들은 연구지원 부족으로 이 소중한 시간을 대부분 허비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2009년 미국과학재단(NSF)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과학자 가운데 미국 잔류 의사를 표명한 경우가 1996~1999년 50%에서 2004~2007년에는 69.2%로 20% 가까이 늘었다. 이는 국내에 고급 이공계 일자리가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신진 연구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이에 대해 오 이사장은 "과거에는 교수 자리가 나면 제자들이 대부분 지원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쫓아다니면서 요청해도 절반도 지원하지 않는다"면서 "우리 대학의 교수 선발 기준이 높아진 측면도 있지만 외국 대학이나 연구소에 비해 연구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 이사장이 교수로 재직했던 서울대는 신진 연구자의 정착연구비(start-up fund)로 평균 1억~1억5,000만원 정도를 제공한다. 이는 국내에서는 높은 수준이지만 매사추세츠공대(MIT)나 스탠포드대와 같은 미국 대학과 비교하면 10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오 이사장은 신진 연구자에 대한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을 지낼 때 교수 정년보장 심사 과정에서 외국 연구자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정착연구비로 얼마를 주느냐고 묻더군요. 3만달러라고 얘기했더니 '한국 연구자가 외국 연구자와 동등하게 경쟁하라는 의미일 텐데 3만달러를 주고 어떻게 50만~100만달러를 지원하는 우리와 경쟁하려 하느냐'고 반문해 얼굴이 화끈해진 적이 있습니다." 올해 한국연구재단은 신진 연구자 지원에 790억원을 쓴다. 지난해보다 지원금액이 170억원가량 늘었다. 연구장비비를 포함해 5년간 총 12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우수 신진 연구자 지원사업'을 처음 도입했고 5년간 총 7억5,000만원을 지원하는 '우수 박사 후 연수사업'도 신설했다. 오 이사장은 "우리 과학자가 세계 과학계의 메이저리그에서 뛸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갖췄다면 이에 상응하는 연봉과 대우를 해줘야 한다"면서 "국내 연구환경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여야 외국 학생들도 데려와 연구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오 이사장은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패러다임이 모방ㆍ추격형에서 창조ㆍ선도형으로 바뀌고 있는 만큼 연구 지원방식과 풍토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질 높은 성과물을 내놓기 위해서는 연구자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연구환경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성실실패(honorable failure) 용인제도'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평가에서 C등급 이하를 받으면 몇년간 정부 지원 연구를 하지 못하는 제재를 받았는데 비록 연구 결과가 당초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성실하게 연구를 수행했다면 성실실패로 인정함으로써 실패 위험이 있지만 독창적인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한 제도다. 오 이사장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부담 때문에 도전적인 연구보다는 비교적 실패 위험이 적은 연구에 치중해 고만고만한 성과를 내는 데 그쳤다"면서 "비록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더라도 성실하게 연구했다면 실패도 과감히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노벨상도 탈 수 있다"고 말했다. 모험연구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은 폭발적이다. 한국연구재단이 올해 모험연구 46개 과제를 공모했는데 경쟁률이 상반기 34대1, 하반기 28대1을 기록했다. 그만큼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에 대한 연구자들의 갈증이 심했다는 얘기다. 오 이사장은 "올 상반기 예비연구평가 결과 탈락한 4개 과제가 모두 성실실패로 인정됐다"면서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정부 R&D 사업에 대해 평가를 엄격하게 하되 가능성 있는 연구자와 연구과제에 대해서는 지원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오 이사장은 일본이 사업화 가능성이 전혀 없고 실험 결과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고시바 마사토시(도쿄대) 교수의 중성미자(neutrion) 연구에 막대한 국가예산을 투입한 결과 중성미자 검출에 성공해 노벨물리학상을 탄 사례를 언급하며 기초ㆍ원천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기초연구 투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총연구개발투자 총액 중 응용ㆍ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는다"면서 "제도상의 문제로 연구재단이 미국 NSF처럼 직접 예산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기는 어렵지만 재단 고유의 사업비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 기초연구사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