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명품 장수기업 키우자] <1편> 레제노키앙에 길을 묻다

佛왕실과 수세기 거래 '멜르리오' 혁신DNA로 400년 명맥 이어가

이집트풍서 아르누보까지 트렌드 재탕 삼탕 하지 않고 보석세공기술 시대 맞게 변화

200년 이상 넘는 기업들은 노하우 승계·고용보장으로 지역 경제발전에도 큰 기여

200년 이상 된 장수 기업의 모임인 레제노키앙 회원사 임직원들이 지난해 프랑스 앙부아즈 성에서 열린 연례회의에서 화합을 다지고 있다. /사진제공=레제노키앙협회


루이비통·롤렉스·티파니 등의 매장이 밀집해 있는 프랑스 파리의 명품거리인 방돔광장. 까르띠에 매장 옆으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목걸이·귀걸이들이 가득한 화사한 매장이 시선을 잡아 끌었다.

멜르리오 디 멜르 로드숍이다. 지난 1613년에 설립돼 올해로 무려 401년을 맞는 명품 귀금속 업체다.


이 회사의 올리비에 멜르리오 회장은 "프랑스 왕정과 수세기 동안 거래하며 팔찌를 비롯한 보석 세공 기술을 발전시켜왔다"면서 "마리 드 메디시스,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루이즈, 외제니(나폴레옹 3세의 부인) 같은 왕비를 비롯해 부르봉 왕가 등이 주요 고객이었다"고 소개했다.

멜르리오 디 멜르가 4세기가 넘는 동안 14대 후손인 멜르리오 회장이 최고경영자(CEO)를 이어오면서도 변하지 않는 점은 '항상 새로운 쇄신을 한다는 것'. 그는 "보석은 빠르게 유행이 퍼지는데 우리는 지나간 트렌드를 재탕·삼탕하지 않고 나폴레옹 시절에는 이집트풍을 창조했고 낭만주의나 아르누보와 같은 모든 예술 사조가 지나갈 때마다 거기에 맞춰 보석세공기술을 계속 변화시켰다"고 강조했다. 항상 새롭고 창조적인 유니크한 제품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본지 취재진이 프랑스·독일 등 장수기업의 본산에서 만난 명품 장수기업의 DNA는 '혁신'이었다. 100년, 2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장수기업이라고 전통에만 매몰돼 있지 않았다. 창조하고 혁신하는 진보정신에 핵심기술력, 높은 품질과 서비스는 기본이었다.

멜르리오 디 멜르는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의 모임인 레제노키앙협회 멤버다. 협회 명칭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죽지 않는 인물인 '에녹'에서 유래한다.

275년 역사의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 묄러그룹의 피터 반 묄러 회장(레제노키앙협회 전 회장)은 "경쟁이 치열한 현대 사회에서 기업의 영속성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면서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방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강력한 기업 문화를 이끌고 장수기업으로 만들어준다"고 설파했다.


이처럼 레제노키앙 회원사들은 한목소리로 혁신을 강조했다. 협회에서는 회원사가 아니더라도 기술혁신과 노하우 승계, 직원 고용보장 등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는 가족기업을 뽑아 지난 2011년부터 혁신의 상징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상(Leonardo da Vinci Prize)'을 수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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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해는 이탈리아의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우주항공 부품을 만드는 프랑스의 다에르사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다에르사는 지난 1863년에 설립된 후 기업혁신은 물론 마르세유 지역경제 발전과 지역 주민을 위한 활동에 힘써왔다. 이 회사만 들어가면 퇴직할 걱정 없이 안전하게 고용이 보장된다는 이미지를 구축했고 기술 노하우도 성공적으로 승계해왔다.

네덜란드 건강기능식품 판에그헨그룹을 이끌고 있는 빌렘 판 에그헨 레제노키앙협회 회장은 "혁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상을 통해 세계 경제에서 가족 기업의 역할을 인식시키고 협회 기업의 이슈에 대해서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혁신과 더불어 레제노키앙 회원사들은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제라드 리포비치 레제노키앙협회 홍보실장은 "글로벌 위기가 닥쳤을 때 다른 업체는 선제적으로 직원 구조조정에 나섰는데 장수기업은 상대적으로 덜한 모습이 증명돼 최근 들어 여론이 바뀌고 있다"며 "경영자는 이윤을 어떻게 후손에게 넘겨줄까 고민하지 말고 회사 품질에 대한 존중, 직원에 대한 존중, 어떻게 회사를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인간적 가치를 늘 머릿속에 넣어두고 있어야 기업가정신 승계가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레제노키앙 협회'는

가족 경영 등 4대 조건 갖춰야 가입 가능… 대기업에서 중기까지 9개국 44개 기업뿐


200년 이상 된 장수기업 모임인 레제노키앙협회 회원사는 9개 국가 44개에 불과하다. 세계 3대 초콜릿 회사 노이하우스, 프랑스 도자기 전문 업체 레볼, 스위스 글로벌 PB전문은행 롬바르오디에, 일본 호텔업 호시, 독일 자동차 부품 뮬러그룹, 이탈리아 선박 아우구스테아, 네덜란드 건강기능식품 판에그헨그룹 등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규모가 다양하다. 업종도 자동차·와인·섬유 등으로 제각각이다.

레제노키앙 멤버가 되려면 까다로운 네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창업역사가 200년이 넘고 가족이 소유하거나 대주주로 남아 있고 지금도 경영을 하고 있으며 재무구조가 좋아야 한다. 이를 통해 고객에게 영속적인 기업이라는 믿음을 심어줌과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몸담고 싶은 회사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뒤 전체 회원의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해야 가입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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