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노후 생활보장을 위해 도입된 퇴직연금이 제도 시행 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급여 가운데 연금 형태로 지급되는 비율은 0.1%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일시에 지급되는 퇴직금처럼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25일 홍원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이 금융감독원의 자료를 받아 공개한 유형별 퇴직급여 지급현황에 따르면 올 1ㆍ4분기 55세 이상 퇴직자에게 지급된 퇴직급여 1조5,689억원 가운데 연금 형식으로 지급된 금액은 17억원(0.1%)에 불과했다.
연금 지급 비율은 지난해 3ㆍ4분기(0.4%)와 4ㆍ4분기(0.5%)보다도 더 떨어진 수치다. 수급자를 기준으로 봐도 올 1ㆍ4분기 3.0%만이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았다. 지난해 3ㆍ4분기와 4ㆍ4분기는 각각 3.2%, 3.7%였다.
퇴직연금은 지난 2005년 중장년층의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됐다. 퇴직금 형식으로 한 번에 받을 경우 자녀 학자금ㆍ창업자금 등으로 은퇴자금을 써버리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55세가 넘어 퇴직연금을 받을 때가 되면 퇴직금처럼 일시금으로 받는 경우가 절대 다수여서 퇴직연금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홍 연구위원은 "영국ㆍ호주 등 선진국의 경우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받을 경우 40~50%대의 높은 세율을 부과하거나 일정 비율은 강제로 연금으로 받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는 연금으로 수령하기 위한 강제ㆍ유도책이 거의 없어 많은 은퇴자들이 일시금으로 받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55세 이전에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퇴직자산을 소진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도입된 IRP(개인퇴직연금)제도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이직 시 퇴직적립금을 써버리지 않도록 퇴직자산을 IRP 계좌에 의무적으로 이전하도록 하고 있다.
전용일 성균관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IRP 계좌에 옮기도록만 하고 이를 해지하는 데는 아무런 제한이 없기 때문에 IRP 계좌를 개설한 근로자 중 80% 이상이 퇴직금을 받은 후 즉시 계좌를 해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고령화시대에 대비하려면 퇴직연금 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는 것이 필수"라며 "연금 수령 시 세제 혜택을 늘리고 IRP 제도를 보완해 퇴직연금이 '연금'으로 기능하도록 해야 적극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