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위기의 건설산업] <1> 건설업계도 '기업 프렌들리' 절실

참여정부 '규제 전봇대'부터 뽑아야<br>분양가상한제·전매제한등 아직 고스란히 남아<br>지나친 간섭보다 시장자율에 맡기는 게 바람직<br>조세·이익환수 등 간접규제로 발상 전환 필요




지난해 오티스엘리베이터는 아찔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보수 계약을 맺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사고가 발생했는데 관리책임회사의 ‘부실 관리’가 원인이라는 최종 조사 결과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 자체조사 결과 해당 사고는 사용자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었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이 같은 사고가 두 번 일어나면 엘리베이터 보수관리 면허가 취소된다는 규정이었다. “한국에서 오티스가 관리하는 엘리베이터가 전국 10만개에 달합니다. 10만개의 엘리베이터를 관리하는 업체가 두 번 실수해도 면허가 취소되고 200개를 관리하는 회사가 두 번 실수를 해도 면허가 취소된다는 규정이 한국에 있어요. 취지는 이해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대표적인 한국의 규제입니다.” 한국에 선교사로 첫발을 내디딘 후 14년간 한국에서 지내고 있는 브래들리 벅 월터(사진) 오티스엘리베이터 대표이사는 이처럼 한국 정부의 각종 규제로 인한 억울한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친기업 정책)을 내세운 MB정부가 탄생한 지 다섯 달이 지났지만 노무현 정부의 규제일변도 정책이 아직도 현장 곳곳에 잔존한다는 게 기업인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정부 출범 초기에 전봇대를 뽑으면서 각종 규제를 풀어나갈 것이라고 기업들에 공언했지만 아직 참여정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건설업계에 대한 규제는 가장 가혹하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분양가상한제를 비롯해 ▦전매제한 규정 ▦각종 금융규제 ▦후분양제도 ▦소형주택 의무건설비율 규제 등 건설업계에 대한 규제는 아직도 시장을 숨막힐 정도로 억누르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부동산정책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이들의 대답은 간단하다. 벅 월터 대표이사는 이와 관련, “맨해튼 아파트 가격이 비싸면 사람들은 인근 뉴저지로 옮아가고 사람이 없으면 (맨해튼 아파트) 가격은 당연히 떨어진다”며 “모든 재화의 가격은 전적으로 시장에 맡겨야 할 부분이지 정부가 정한 잣대로 가격을 정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이라고 말했다. 전매제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정부 관료와는 전혀 다르다. “아파트를 분양 받았는데 (7년 또는 10년 동안) 자기 맘대로 못 팔게 돼 있다면서요. 왜 그렇지요. 자기가 열심히 일한 돈으로 집을 샀는데 자기 의지대로 팔지 못한다는 것이 선뜻 이해가 안 돼요.” 벅 월터 대표이사는 이어 “정부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방법론으로 평가한다면 한국 정부는 기업들은 물론 부동산 시장ㆍ건설업계에 대해 ‘간섭’을 하려고 한다”며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고 수요가 줄어들면 가격이 떨어지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할리 변호사 역시 한국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고개를 내젓는다. “제가 10년 전 광주에서 가장 좋은 지역에 아파트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고작 3,000만원 오르는 데 그쳤습니다. 지방 주택경기가 무너지면서 지방 시민들은 서울 시민들에 비해 자산을 불리지 못해 서울과 지방 간 자산 양극화가 심각할 정도입니다. 지방 분양시장 활성화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입니다.” 정부의 각종 규제로 지방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면서 지방 경제가 침체된 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법률 전문가인 그는 분양가상한제와 관련해 “분양 가격에 상한제 개념을 도입한 것은 서민들에게는 아주 훌륭한 정책인 만큼 부동산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해도 서민용 주택에 대해서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이제 부동산 시장이 진정세를 보이고 있어 일률적으로 상한제를 적용하기보다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양도세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미국의 경우 이미 구입한 주택에 대해 차익을 남길 경우에도 그 투자수익금을 다시 부동산에 투자하면 양도세를 전액 면제 받는 데 반해 한국의 규정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는 게 할리씨의 생각이다. “미국은 부동산 투자 차익금을 재투자하면 양도세를 부과하지 않아 오히려 부동산 투자를 권장합니다. 미국인들에게도 집을 마련한다는 것은 꿈 같은 이야기에요. 한국은 반대로 양도세 규정을 강화해가면서 세금을 걷어 시장 참여자들의 부동산 시장 참여를 위축시키고 있어요.” 한국 건설업계나 주택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분명 미국이 부동산 정책에서 한국보다 훨씬 시장 친화적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와 부동산 시장에 대해 각종 규제를 쏟아내는 국토해양부의 입장은 다르다. 국토부 측은 고분양가가 인근 지역의 시세 상승을 이끌고 인근 지역의 시세는 또 다시 고분양가를 낳는 악순환 구조를 부동산 시장이 경험한 만큼 분양 가격 조정을 통해 집값 안정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식의 시장 친화적 정책이 한국 부동산 시장에 작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며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의 절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공급자 위주의 시장인 상황에서 미국식 부동산 정책을 모방하기에는 지나치게 과도한 리스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와 일반 국민들은 물론 외국인마저도 한국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반시장적 조치라고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지만 정부는 규제만이 시장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의미다. 한창환 대한건설협회 기획조정실장은 “그동안 건설 관련 규제가 단기적인 규제 효과를 고려해 직접규제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부동산 관련 전매 제한과 가격 규제 등의 직접규제 등도 이제는 조세 및 이익환수 장치의 간접적 규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규제 없애도 새규제 또 생겨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비슷"
건산연 부동산정책 문제점 지적
지난 4월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100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건설업계의 희망 섞인 희망보고서다. '새 정부의 건설규제 개혁 과제'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부동산과 건설업계에 대한 규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이의섭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새 정부에 기대하고 바라는 것을 위주로 보고서를 작성해 관련 기관에 수차례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보고서에서 지적한 각종 규제를 풀어야만 건설산업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산연이 MB정부 취임에 맞춰 이 같은 보고서를 작성한 까닭은 건설업계가 고사위기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규제 강화로 미분양 주택 수가 급증해 주택건설 업체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도산 업체 발생이 현실화되는 상황이다. 백영권 건산연 연구위원은 "과거 정부들이 규제완화를 국정 주요 과제로 삼았지만 본질적으로 규제자가 중심이 돼 규제를 개혁해왔다"며 "결국 건설 부문의 규제는 지난 1998년이나 지금이나 숫자에서 별반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다 규제가 필요하지 않는 부분에까지 정부가 개입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최초로 등록된 건설교통 분야 규제 건수는 900건을 기록한 후 2006년 12월 말 기준으로 867건에 달해 1998년 대비 33건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 과정에서 폐지 등으로 감소한 규제 수는 469건이지만 신설된 규제가 436건에 달해 규제가 없어지는 대신 새로운 규제가 생겨나는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건설업계를 옥죄고 있는 분양가상한제와 금융규제 등에 대한 건설업계의 시각은 어떨까. 강운산 건산연 연구위원은 "분양가상한제나 금융규제 등은 분양 가격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강남 집값이 급등하는 현상을 막기 위한 참여정부의 긴급처방"이라며 "긴급처방은 응급실 환자에게만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퇴원해서 정상 기력을 찾아가는 환자에게 여전히 정부가 응급처치를 지속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경기가 살아날 수 있는 숨통을 터줘야만 건설업계가 활력을 되찾을 수 있고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는 긴급처방을 걷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