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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4000가구 중 59·84㎡ 매물 10개 그쳐
수급균형 깨지고 대출문턱 낮아 가격 폭등
전셋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전용 84㎡(옛 32평) 아파트의 전셋값이 처음으로 10억원을 돌파하는가 하면 서울 전역에서 전세가가 이전 분양가를 뛰어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전세가가 매매가의 70%를 넘는 단지가 잇따르면서 '깡통전세'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전셋값은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3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과 일선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 84㎡의 전셋값이 10억원 벽을 깬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처음으로 11억원(27층)에 계약된 후 10억원에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가 잇따르면서 전세 시세가 10억원대에 형성된 것이다. 현재 이 단지 84㎡의 전세 시세는 10억6,000만~11억원으로 분양가(10억4,500만~11억600만원)를 추월한 상태다. 반포동 M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초만 해도 9억원대가 심리적 상한선이라는 판단이었지만 이제는 11억원이나 12억원에도 계약이 가능하겠다는 분위기"라며 "전세의 인기가 워낙 높다 보니 2,444가구에 달하는 대단지임에도 거래 가능한 매물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전셋값 기록 경신은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2만가구 이상의 새 아파트가 밀집된 송파구 잠실동 일대에서도 최고가 전세계약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5,563가구인 잠실 리센츠의 경우 84㎡의 전세계약이 최근 8억원에 성사되면서 7억원선에 형성돼 있던 시세를 뛰어넘었다. 전셋값이 분양가(6억2,000만원선)보다 2억원 가까이 비싸진 셈이다. 인근 엘스 역시 지난달 59㎡가 6억원에 전세 계약되면서 종전 가격인 4억9,000만~5억3,000만원을 크게 웃돌았다.
잠실동 P공인 관계자는 "한번 전세로 들어온 세입자가 나가지 않고 계속 재계약을 하면서 협의할 여지도 없이 집주인의 요구가 곧 전셋값이 되고 있다"며 "시중은행 전세자금대출의 문턱이 낮다 보니 매매나 월세보다 전세의 기회비용이 저렴하다고 생각하는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셋값이 이처럼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은 매물수급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집주인들은 너도나도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있지만 여전히 세입자는 전세를 선호하다 보니 매물이 절대 부족 상태다.
서울 송파구 잠실·신천동 일대에 지난 2007~2009년 들어선 5개 단지(엘스·리센츠·트리지움·레이크팰리스·파크리오)의 총 가구 수를 합하면 2만4,479가구에 달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순수 전세매물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5개 단지를 통틀어 59㎡ 전세매물은 하나도 없고 84㎡ 역시 10개 미만이라는 게 이 일대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신천동 JS파크리오의 한 관계자는 "은행 금리가 낮아 거의 모든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고 있어 순수 전세는 정말 귀한 매물"이라며 "집값 상승 기대감이 높지 않기 때문에 다들 전세를 구하다 보니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아 전셋값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라고 말했다.
전세자금대출 문턱이 낮은 것이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중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3%대로 1억원을 대출 받아도 300만~400만원의 이자만 내면 되기 때문에 세입자들이 매매나 월세보다 전세대출의 기회비용이 저렴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광장동 H공인의 한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재계약시 전세를 월세로 돌리려고 일부러 보증금을 1억원가량 높여 부르는데도 세입자들이 기꺼이 수긍하고 있다"며 "오히려 보증금을 구해오는 걸 보며 집주인이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전했다.
전셋값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매매가에 근접하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70%를 넘는 경우는 허다하고 90%에 육박하면서 매매가를 위협하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매매·전세가 격차가 컸던 강남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역삼동 '역삼래미안'의 경우 59㎡의 전세 시세가 5억8,000만~6억3,000만원으로 매매 시세(7억~7억2,000만원)의 최고 88%에 달한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리체' 역시 59㎡ 전셋값이 7억6,000만원으로 매매가(8억6,000만원)의 88% 수준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2008년 35%에 불과했지만 2010년 42%로 껑충 뛴 후 매년 5~8%포인트가량 상승하면서 올해 1월 말 기준으로 64%까지 치솟았다.
과도한 전셋값 상승의 더 큰 위험은 '깡통전세' 문제다. 전세가율이 치솟을수록 집주인이 집을 팔아도 전세금과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할 가능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고가 전세계약이 속속 이뤄지면서 주변부 전셋값을 함께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현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여력이 되는 이들은 전세보증금을 집주인 요구대로 올려주면서 살 수 있지만 이미 대출금 비중이 높은 가정의 부담도 함께 높아지는 문제가 생긴다"며 "전세 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일부 세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월세를 선택하거나 외곽 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